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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지사항

    봉황각 준공 100주년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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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웹마스터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6,098회   작성일Date 12-06-13 11:18

    본문

    민족의 지도자이자 위대한 스승이신 의암성사님의 숨결과 자취가 서려 있고,
    민족정신의 보고인 봉황각 준공 100주년을 맞이하여 아래와 같이
    기념식과 의암성사님 유물 전시회를 하오니
    많이 참석하시기 바랍니다. 

    - 아 래 - 

    · 일 시 : 포덕 153년 6월 19일(화) 오전 11시
    · 장 소 : 강북구 우이동 봉황각 앞마당(끝)

    천 도 교 중 앙 총 부


    <기념식 식순>

    1. 개 식

    1. 국민의례

    1. 청수봉전

    1. 심 고

    1. 주문3회병송

    1. 봉황각의 유래

    1. 기 념 사

    1. 축 사

    1. 천덕송합창

    1. 심 고

    1. 폐 식

    * 기념식후에는 성사님 유물전시회 개막식이 있습니다.


    <봉황각의 유래>

    봉황각은 의암성사님의 독립정신을 표상하는 건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의암성사님은 포덕51(1910)년에 경술국치를 당하자 “조국광복은 내가 한다. 10년 안에 나라를 되찾고야 말겠다”고 말씀하시고 국권회복에 대한 결연한 의지를 나타내었습니다.

    포덕52(1911)년 봄에 의암성사님은 의친왕 이강(義親王 李剛)공과 같이 세상의 이목을 피해 우이동에서 밀회를 하며 국권회복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그 해 가을에 의암성사님은 춘암상사(朴寅浩)를 비롯한 중앙총부 관장들을 대동하고 우이동 골짜기로 갔습니다. 당시 우이동은 벗나무와 밤나무가 울창하고 서너 채의 초가집만이 있는 그야말로 심심산골이었습니다.

    의암성사님은 우이동 일대를 두루 살피신 후 현재의 봉황각 터에 이르러 금융관장 윤구영에게 이 일대의 땅과 임야 몇 만평을 매입하라고 지시하였습니다. 그 지시에 따라 이 해에 이 일대의 밭과 임야 등 28,382평을 800원에 매입하였습니다.

    그리고 이곳에 고루거각(高樓巨閣)을 지으라는 의암성사님의 지시에따라 현기관의 오상준(吳尙俊)을 감독으로 임명하고 포덕53(1912)년 3월 7일에 착공하여 4월 2일에 상량(上樑)을 하고 6월 19일에 낙성식을 거행하면서 이 건물을 봉황각이라고 명명하고 현판은 한암 오세창 선생께서 쓰셨습니다.

    신축된 봉황각은 목조 기와집으로 건평이 28평2홉이며, 안채 역시 목조 기와집으로 18평2홉, 그리고 부속건물 8평 3홉입니다. 평면이 궁을자형(弓乙字形)으로 되어 있는 봉황각은 정면 서까래가 49개, 측면 서까래가 21개, 중간 서까래가 13개로 천도교의 주문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의암성사님은 봉황각을 신축하면서 그 해 4월 15일부터 전국의 중견 교역자를 7차에 걸쳐 49일씩 연성수련을 시행 하였습니다. 이를 살펴보면,

    제1회 포덕 53(1912)년 4월 15일 ~ 49일 21명 도선암

    제2회 포덕 53(1912)년 8월 15일 ~ 49일 49명 봉황각

    제3회 포덕 54(1913)년 1월 1일 ~ 49일 49명 봉황각

    제4회 포덕 54(1913)년 4월 6일 ~ 49일 49명 봉황각

    제5회 포덕 54(1913)년 11월 1일 ~ 49일 105명 봉황각

    제6회 포덕 54(1913)년 12월 18일 ~ 49일 105명 봉황각

    제7회 포덕 55(1914)년 2월 5일 ~ 49일 105명 봉황각

    제 5회 부터는 인원이 늘어남에 따라 부근에 소 봉황각을 지어 수련자를 분산하여 연성을 시행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7차에 걸쳐 483명의 중견 교역자들이 의암성사님의 지도아래 연성수련을 통해서 독립의지를 굳게 다졌습니다.

    수련기간 동안 의암성사께서는 이신환성(以身換性)의 법설을 비롯해서 성신쌍전(性身雙全), 교정일치(敎政一致), 신앙통일(信仰統一), 규모일치(規模一致) 등 많은 법설을 통해서 독립의지를 고양시켰습니다. 특히 이신환성(以身換性)의 법설을 통해서 “육신은 한때의 객체요 성령은 영원한 주체”임을 강조하시면서 생명을 주의화(主義化)하여 보국안민의 역군이 되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천도교 대표 15명도 봉황각 수련에 참석한 분들이었으며, 또한 전국적으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총 궐기하여 태극기를 들고 독립만세를 부를 수 있었던 것도 봉황각 수련을 통해서 독립의지를 굳게 다졌던 전국 각처의 천도교 교역자가 있었기에 가능 하였던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봉황각은 3.1운동의 발원지라고 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며, 봉황각의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길이 전승하기 위하여 포덕 110(1969)년 9월 18일자로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2호’로 지정되었고 현재 3.1정신을 현창하기 위한 수련도장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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