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 천도교여주교구
명칭 | 천도교여주교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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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 | 교구장 혜암 최용근 |
전화 | 031-885-1321 |
휴대전화 | 010-5217-3888 |
지역 | 경기도 |
주소 | 경기도 여주시 강변로 64-4 |
방문자 수 | 2035 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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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천도교 여주교구, 다시 개벽의 길을 열다
120여년의 역사 위에 시민과 함께 걷는 새 길
경기도 여주, 남한강 줄기를 따라 흐르는 고즈넉한 이 도시에 120여년의 세월을 이어온 천도교 여주교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해월신사께서 의암 손병희 성사께 도통을 전수한 곳이며, 3.1혁명의 중심지 중 하나였으며, 이천식천의 해월신사의 설법을 통해 새로운 생태문명의 대전환을 천명하신 역사적인 곳입니다.
해월 최시형 신사의 숨결이 머무는 곳
여주는 천도교 역사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 고장입니다. 천도교 2세 교조 해월 최시형 신사의 묘소가 바로 이곳 여주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선 말기, 사발통문과 민중항쟁으로 이어진 동학의 정신을 이어받아, 해월 신사는 시천주(侍天主)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며 생애를 마쳤습니다. 신사님의 묘소는 여주시 금사면 주록리 산 138에 자리잡고 있으며, 오늘날에도 많은 교인들과 시민들이 방문하고 있습니다.
여주는 그야말로 동학·천도교 정신이 살아 숨 쉬는 땅입니다.
동학에서 천도교로, 그리고 여주로
천도교 여주교구는 포덕47(1906)년 6월 2일, 동학이 천도교로 전환된 이후 곧바로 세워졌습니다. 교구의 설립일이 해월 최시형 신사의 순도일이라는 점은, 이 공간이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신앙의 정신과 희생을 계승하는 상징적 장소임을 보여줍니다.
특히 여주지역은 동학혁명 당시부터 많은 교인들이 함께하며 민족의 독립을 위해 싸웠던 역사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해월 신사께서 관군에 쫓기다 여주 강천면 도전리 전거론에서 은신하던 이야기, 1919년 3.1운동 때 교인 전원이 구속되어 옥고를 치렀던 사건은 지금도 교인들 사이에서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오랜 여정을 지나 오늘에 이르기까지
여주교구는 지난 100여 년 동안 시대의 변화에 따라 여러 차례 그 터를 옮기며 교당을 지켜왔습니다. 전쟁으로 교당이 불타기도 하는 등의 여러 시련을 겪기도 했지만, 그 모든 과정이 신앙의 의지와 공동체의 힘으로 극복되어 왔습니다.
포덕165(2024)년, 마침내 지금의 교당이 새롭게 개축되었습니다. 외형은 새로워졌지만, 속에 흐르는 동학 정신과 신앙의 진정성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다시 개벽을 꿈꾸는 공간
천도교 여주교당은 이제 신앙 공간을 넘어,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정신 수련과 사회적 실천의 장을 지향합니다.
♣ 누구든 부담 없이 머물 수 있는 명상과 치유의 공간
♣ 시민들과 함께 사회 이슈를 이야기하고 나눌 수 있는 독서모임과 토론의 마당
♣ 무엇보다도 자주성 회복과 공동체 연대를 위한 열린 문화 공간으로 거듭나고자 합니다.
교당을 찾는 이들에게 종교적 신앙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떤 종교를 믿든, 혹은 믿지 않더라도 자신의 삶을 더 단단히 만들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환영합니다.
주소 : 경기도 여주시 강변로 64-4
개방 시간: 명상·독서 프로그램 및 교구 행사 일정에 맞춰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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