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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삼관법(十三觀法) 연구 > 교리교사연구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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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삼관법(十三觀法)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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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웹마스터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3,875회   작성일Date 11-09-08 15:54

    본문

    <태암 오명직 선도사>

    의암성사 법설 “십삼관법”은 열세가지 관법(觀法) 으로 수도의 과정과 방향을 밝혀 주신 법설입니다.  
    “무체법경과 후경(後經)을 총 망라해서 압축한 매우 중요한 법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수도하는 사람들은 많이 읽어서 외우고 평소에 수시로 읽으면서 깊이 생각하므로써 자기 좌표를 알고 전진하는 수도가 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경전은 아는데 그칠것이 아니라 하나 하나 실지로 체험하고 행해야만 참뜻을 깨닫게 되고 도성덕립의 경지에 이르게 될것입니다.
    저는 최근 “십삼관법”이 매우 소중한 법설임을 마음속 깊이 느끼면서 수도하는 여러분께 다소라도 참고가 될까 해서 생각하는바를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1, 주문을 생각하여 보는 것과 감화함을 보는 것
      “염주관 감화관(念呪觀 感化觀)”  

     세상사람들은 주문도 모르고 한울님의 감화(感化)도 모르고 무의미하게 살아 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사람들은 잠자는 세계, 꿈꾸는 세계, 깨어 있는 세계, 이것 밖에 모릅니다.  
    이 세가지 세계 말고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것입니다.
     주문을 외우면 한울님의 감화를 받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혼탁한 세상물결에 잠겨서 한울님의 덕도 모르고 진리도 모르고 방황하면서 살다가 다행히 천도교에 입교하여 주문을 외우므로 써 비로소 한울님의 감화를 받는 체험을 얻게 되는것입니다.
    한울님과 통하는 길을 얻는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전에는 주문도 모르고 한울님이 계시다는것도 모르고  한울님의 감화가 있다는것도 모르고 방황하면서 살다가 “지기금지 원위대강(至氣 今至 願爲大降)   시천주 조화정(侍天主 造化定) 영세불망 만사지(永世 不忘 萬事知) ”이 주문을 지성으로 외우니까 한울님의 감응이 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고 그 세계를 홀로 감격스럽고 흐믓하게 느끼게 되는것입니다.

    2, 나를 없다고 보고 한울을 있다고 보는 것
      “아무관 천유관(我無觀 天有觀)”  

     한울님의 감화를 받고 감개무량한 심경이 되어, 무한한 기쁨을 느끼는 동시에 그 동안 한울님의 은덕도 모르고 금수 같이 살아온 것이 너무도 부그럽고 죄송함을 느낀 나머지 자기 자신마저 망각하고 한울님만 지극히 생각하는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앙의 본궤도에 들어서게 되는것입니다.
    만리 타향에서 외롭게 고생하다가 그리운 고향에 돌아와 부모님 품에 안기게 되니까, 너무 감개 무량해서 잠시 자기 자신을 망각한 상태와 같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한울의 권능이 사람을 이긴 (天之權能 勝人)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여기서 깊은 신앙을 하는 것은 좋지만 자칫하면 한울님께 너무 예속된 의타적 신앙에 빠지기 쉽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한 단계씩 전진하는 수도를 해야 할 것입니다.

    3, 나를 있다고 보고 한울을 없다고 보는 것  
       아유관 천무관(我有觀 天無觀)  

     한울님의 감화로 내 생각보다 한울님 생각을 주로 하면서 지내는 동안 한울님은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 주신다는 것을 알고, 차차 한울님 보다 내 생각을 더 많이 하면서 한울님을 부리는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한울님께 의존하지 않고 자주적으로 하는 것은 좋은데 아직 육신관념이 남아 있기 때문에 자칫하면 자만과 감정적인 방향으로 흐르기 쉬우므로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4, 성품을 없다고 보고 마음을 있다고 보는 것
      “성무관 심유관(性無觀 心有觀)”

     한울님만 믿으면서 신앙하면 되는줄 알았는데, 생각해 보니까 그것만이 아님을 알게 되는것입니다.
    내 마음 가짐에 따라서 모든 일이 좌우 된다는 것을 알고, 마음을 닦아야겠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또 한울님 모심을 알아야 마음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직 성품에 대한 생각은 하지 못하고 마음공부에 치중하는 단계입니다.
     그 동안 마음공부를 모르고 살아온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참회하면서 열심히 마음공부를 하는것입니다.  여기에서 천도교 수도의 특성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천도교는 한울님을 믿는 동시에 자기 마음을 닦고, 마음을 닦는 동시에 한울님을 믿고 수행하는 것입니다.

    5, 마음을 없다고 보고 성품을 있다고 보는 것  
      “심무관성유관(心無觀 性有觀)”

     마음을 닦아서 맑고 깨끗한 마음이 되게 하고, 괴로운 마음을 기쁜 마음이 되게 하고, 복잡한 마음을 일심(一心)이 되게 하는 마음 공부를 하다 보니까 마음의 근본이 성품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것입니다. 성품과 마음은 근본은 하나이지만 작용하기 전 상태를 성품이라 하고 작용하는 상태를 마음이라 한다
    는것과, 성품공부를 해야 무궁한 나를 찾고 마음공부도 제대로 할 수 있고, 도를 통하게 된다는 것을 알고 성품공부에 열중하게 되는 것입니다.
    복잡한 마음을 닦아서 일심이 되게 하고 나아가 무심 상태, 비고 고요한 경지에 이르도록 정진하는 것입니다.

    6, 성품도 없다고 보고 마음도 없다고 보는 것
      “성무관 심무관(性無觀 心無觀)”

    사람의 입장에서 보니까 성품도 있고 마음도 있는것이지 한울님 입장에서 보면 성품도 없고 마음도 없는것입니다.
    수도를 걔속하므로 써 육신관념과 개체의식이 다 없어지고 오로지 무형한 성령의 세계에서 살면서 모든 사물을 한울님 입장에서 관찰하는 높은 단계에 이른 것입니다.

    7, 성품도 있다고 보고 마음도 있다고 보는 것
      “성유관 심유관(性有觀 心有觀)”

     성품도 마음도 없다고 보는 깊은 경지에 이르렀다가 다시 성품도 있고 마음도 있다고 보면서 성품공부와 마음공불를 병행하는 성심쌍수(性心雙修)의 높은 공부를 하는 단계입니다.
    마음과 성품의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성심쌍방으로 잘 닦아서, 견성각심(見性覺心)의 경지에 도달한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8, 나를 먼저 보고 한울을 뒤에 보는 것
      “아선관 천후관(我先觀 天後觀)”

     육신의 나를 나라고 생각하면 한울이 먼저 있고 내가 뒤에 잇는 것이 사실이지만, 본래아(本來我)를 찾으면 나는 천지만물이 조판되기 전부터 있었고 천지만물은 그 후에 이루어 졌다는 것을 훤히 알게 될것입니다.   여기서 한울은 유형한 한울인 천지만물을 말합니다.   육신관념, 개체의식이 다 없어진 상태가 되니까 한울 보다 내가 먼저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것입니다.

    9, 나도 있다고 보고 한울도 있다고 보는 것
      “아유관 천유관(我有觀 天有觀)”

     드디어 천인합일(天人合一)의 경지에 이른것입니다. 사람의 입장에서 나도 있고 한울도 있다고 보는 것이 아니라, 본래의 나를 찾아 이미 천인합일이 된 상태에서 보는 것임을 알아야 할것입니다.  깨닫고 보니 나와 한울, 나와 세상, 죽고 사는 것이 둘이 아니요 하나임을 알게 되는것입니다.

    10, 나도 있다고 보고 물건도 있다고 보는 것
       “아유관 물유관(我有觀 物有觀)”

     개체의식이 다 없어지고 삼라만상과 나와 일체가 된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육신의 나”의 입장에서 보면 나와 만물이 개개별별이 떨어져 있고 아무 관계도 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본래의 나를 찾고 보면 천지만물이 하나의 영체(靈體), 하나의 생명체임을 알게 되고, 나와 삼라만상이 일체임을 확실히 알게 되는것입니다.

    11, 자유를 보고 자용을 보는 것
      “자유관 자용관(自由觀 自用觀)”

     드디어 대 자유와 자용(自用)을 찾아 천지만물을 자유로 활용하며 공도공행(公道公行), 공도공용(公道公用)의 경지에 이른것입니다.  세상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철조망에 갇혀 예속된 생활을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수도를 잘 해서 물욕과 감정과 아집(我執)을 다 버리고 개체의식이 다 없어지고 생사일여(生死一如), 불생불멸(不生不滅)을 깨닫고 견성각심(見性覺心), 천인합일(天人合一)이 되니가 매사에 순리순도 하게 되고 드디어 대 자유, 대 자용의 경지에 이르게 된것입니다.
    여기서 자유는 마음의 자유를 말합니다.
     그리고 자용은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나 스스로 자유로워  질뿐만 아니라 천지만물을 내 몸 같이 여기고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경지에 이른 것입니다.

    12, 중생을 보고 복록을 보는 것
       “중생관 복록관(衆生觀 福祿觀)”

     오랫동안 흐린 강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간신히 강둑에 올라서서 바라보니 중생이 모두 혼탁한 세상물결에 빠져 헤매고 있는 가련한 정경을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문득 중생을 건져야겠다는 사명감이 생겨 중생 속으로 뛰어 들게 되는 것입니다.  나와 내 가정의 진정한 행복을 찾고 민족과 인류를 구하는 길이 여기에 있다는 확고한 신념과 사명감을 갖고, 길을 잃고 방황하는 세상사람들을 이 길로 인도하기 위해 모든 힘을 기울이게 되는 것입니다.

    13,세계를 보고 극락을 보는 것
      “세계관 극락관(世界觀 極樂觀)”

    세계를 바라보니 세계가 너무나 어지럽고 혼란에 빠져있음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고, 마침내 이 땅 위에 천국을 건설해야 겠다는 거룩한 뜻을 갖게 되고, 또한 이것이 한울님과 스승님의 간절한 소원임을 알게 되는것입니다.
     인류는 한울님의 뜻도 모르고 후천운수의 근본도 모르고, 동귀일체(同歸一體)의 원리도 모르고, 전쟁과 질병과 가난과 온갖 부정 불의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아우성치고 있는것입니다.
    지상천국건설을 위하여 모든힘을 기울이게 되는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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