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지역 동학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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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지역 동학혁명
(교사교리연구 제 3호 - 포덕 140년 12월)
표 영 삼
머 리 말
장흥(長興), 벽사(碧沙), 강진(康津), 병영(兵營) 등 4개 처는 전라도 남단에 있는 요충지이다. 장흥은 부읍(府邑)으로서 중요한 위치에 있을 뿐만 아니라 고부민란 때 동학도를 자극한 이용태 부사가 부임하여 있던 곳이오, 벽사는 벽사도(碧沙道)를 관장하는 찰방이 있는 역참이며, 강진은 보수세력이 강한 곳이다. 또한 병영은 전라병마절제사(全羅道兵馬節制使)가 있는 군사적 요충지이다. 따라서 일반 민중들은 이들 권력기관이 묘여 있어 다른 지역에 비해 억압과 생활고가 심했었다. 이 지역에 동학 활동이 자리잡게 된 것은 1890년대부터이다. 1894년 4월(음) 경에는 수천에 이르렀고 전봉준(全琫準) 휘하 동학군이 혁명의 깃발을 올렸을 때에는 수 백 명이 달려가 합류하였다. 황토재 전투를 비롯하여 황룡촌(黃龍村) 전투, 전주성(全州城) 점령에 참가하여 큰 몫을 하였다. 5월(음) 하순에 고향으로 돌아와 대접주 단위로 도소(都所)를 세우고 활동했으며 6월 중순부터는 장흥·강진읍과 병영에 집강소를 설치하고 폐정개혁에 들어갔었다. 신임 장흥부사 박헌양(朴憲陽)이 7월 그믐에 부임하자 동학군과 보수세력 사이에는 긴장감이 돌았으나 8월에는 별다른 마찰이 없었다. 그러나 9월 중순에 이르러 대원군이 효유문을 반포하는 한편, 김홍집 내각과 일본군이 동학군을 초멸(剿滅)할 정책을 세우자 양측의 대립은 점점 더해 갔다. 결국 11월에 금구(金溝) 동학군의 지원을 받아 12월 4일에 벽사역참(碧沙驛站)을 불태우고 5일에는 장녕성(長寧城)을, 8일에는 강진성(康津城)을 10일에는 병영(兵營)의 전라병영까지 불태워 버렸다. 그리고 12월 12일부터 일본군과 경병이 장흥에 들어오자 이를 물리치기 위해 3만여 동학군은 12월 15일에 일본군을 공격하다가 석대벌(石臺坪)로 후퇴하면서 엄청난 희생자를 내고 말았다. 12월 17일에는 관산 대내장(竹川場) 전투를 끝으로 장흥 지역 동학혁명운동은 막을 내리게 되었다. 이 지역의 혁명운동 과정을 살펴보기로 한다.
1. 동학 조직과 집강소
장흥·강진 지역에 동학이 들어온 시기는 무척 오래 된다. 장흥군(현 보성군) 웅치면 강산리(江山里)의 박병락(朴炳樂) 부부(부인, 文方禮)는 1864년 7월 7일에 입도한 것으로 되어 있다. 장흥종리원 천도교보(天道敎譜)에 의하면 박병락은 1852년 생이고, 문방례는 1860년 생이므로 13세와 5세에 입도한 셈이다. 아마도 그들의 부친인 박재성(朴在成)과 문성기(文成基)가 1862∼3년에 대신사 재세 당시에 입도하여 세대에 걸쳐 전해 진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관산면 송촌리(松村里) 527번지 이순홍(李順洪)은 1882년 10월 3일에, 남면 운주리(雲柱里) 손관익(孫寬益)은 1884년 10월 10일에 입도하였다. 1935년에 작성된 교보이므로 오래된 원로 도인들이 환원하여 기록에서 누락되었을 것으로 보아 1880년대 초에 상당수의 입도자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지도급 인사들이 집단적으로 입도한 시기는 1891년부터이다.『장흥군종리원』연혁에 의하면 "포덕 32년(1891) 신묘(辛卯)에 본군 이인환(李仁煥), 이방언(李邦彦), 문남택(文南澤) 제씨가 교문에 입하다. 시시에 장흥, 보성, 강진, 완도 각 군에 포덕이 대진하여 신도가 수만에 달하다"고 하였다. 지식인들이 몰려들자 장흥 지역의 도세는 급격히 늘어났다. 그리고 강진에 동학이 들어 온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강진군 대구면(大口面)의 윤세현(尹世顯)이 입도한 시기가 1891년이며 장흥 대덕과 생활권이 하나이므로 아마도 장흥 지역을 거쳐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물론 1890년 전에 입도자가 있었을 것이나 마량, 칠량, 군동, 작천, 병영 등지에 동학이 떨친 것은 역시 1892년 이후라고 여겨진다.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장흥, 강진 지역에 동학 세력이 늘어나기 시작한 시기는 교조신원운동과 척왜양창의운동이 일어났던 1892년부터 1893년 사이였다. 이 시기에 입도하여 대접주(大接主)와 접주(接主)가 된 분이 많았다. 장흥 지역에는 대덕 대접주 이인환, 남면 대접주 이방언, 부산(夫山) 대접주 이사경(李士京), 웅치 대접주 구교철(具敎徹), 유치(有治) 대접주 문남택, 관산(冠山) 접주 김학삼(金學三), 남외(南外) 접주 박채현(朴采鉉), 관산 농안(農安) 접주 손자삼(孫子三), 부산 용반(龍盤) 접주 백인명(白仁明), 안량(安良) 접주 고채화(高采化), 대덕 접주 홍순(洪淳)·강봉수(姜琫秀)·오동호(吳東昊)를 꼽을 수 있다. 그리고 강진 지역에는 대접주 김병태(金炳泰), 접주 남도균(南道均), 안병수(安炳洙), 윤세환(尹世煥), 윤시환(尹時煥), 장의운(張儀運), 조병길(曺秉吉), 강운백(姜雲伯), 김옥일(金玉一), 신오삼(申五三), 이세화(李世和), 김종태(金鍾泰), 김관태(金寬泰) 등을 곱을 수 있다. 대접주와 접주의 수로 보아 1894년 6월경에 장흥·강진 동학세력은 약 1만여 명은 넘었다고 추산된다. 대흥 접주 휘하에 천여 명이 있었으므로 고읍·남면·회천·웅치·유치·부산 지역을 합하면 7천명은 넘었을 것이다. 강진도 칠량(七良), 대구(大口), 도암(道岩), 군동(郡東), 작천(鵲川), 병영(兵營)을 합하면 3천명은 넘었을 것이다. 당시 1만 명은 엄청난 수라고 할 수 있다. 장흥·강진 동학군들은 1892년 11월에 열린 삼례 교조신원운동과 1893년 1월의 광화문전복소 교조신원운동, 3∼4월에 열린 보은 장내리와 금구 원평에서 열린 척왜양창운동(斥倭洋倡義運動)에 모두 참가하면서 연대의식을 돈독히 하여 왔다. 정부는 무능하게도 동학군의 생존권을 정치적으로 수용하지 못하고 탄압으로 해결하려 하였다. 문제는 더욱 확대되어 결국 1894년 3월 21일에 혁명의 깃발을 올리게 하였다. 장흥·강진 동학군들도 이방언, 이인환, 구교철, 이사경을 비롯하여 많은 접주들을 따라 전봉준 동학군과 같이 합류하였다. 정확히 참전시기는 알 길이 없으나 4월 22일의 황용촌 전투에는 많은 인원이 참전한 것으로 보인다.『동학사』에 "청죽(靑竹)으로써 얽어 닭의 장태와 같이 만든 것으로 밑에 차바쿠를 붙인 것이며 그 속에는 군사가 앉아 총질을 하게 된 것이니 이 장태를 만든 사람이 장흥 접주 이방언이므로 그의 별호를 이장태라고 불렀었다"고 하였다. 이웃 완도에서도 6명의 젊은이가 참가하였다 하므로 큰 접에서는 20명, 작은 접에서는 10명 정도가 동원된 것으로 추측된다. 일단 전주성을 점령하고 나서 5월 초에 동학군과 정부군이 화약을 이루자 중순경에는 각기 자기 고을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리하여 대접주가 있는 곳에 도소를 설치하고 동학 활동에 들어갔다. 장흥·강진에서도 대접주가 있는 여러 곳에 도소를 설치하고 활발하게 동학 활동을 하였다. 동학 활동은 포덕(布德)이었으며 밀려들어오는 민중들을 동학도인으로 교육시키는 것이 주가 되었다. 그리고 귀천타파를 실천하여 신분제를 무너뜨리는 일에 앞장섰었다. 『장흥부사순절기』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즉 "갑오 7월 그믐에 성주 박후(朴侯, 府使)는 단기로 도임하였다. 이에 앞서 동학배들은 점성(漸盛)하여 열읍에서 작패를 부렸다. 전주성 함락 후에는 더욱 강해졌다. 본읍에는 이방언이란 적괴가 있었으며 성품이 흉악하여 비류에 물들어 경내에 수천의 무뢰배를 모아 침탈 행위를 하여 시끄럽게 했다"고 하였다. 당시 동학군은 보수세력의 공격을 막기 위해 최소한의 병력을 유지하게 되었다. 그래서 부유층과 악질 구실아치들로부터 양곡과 돈을 거두게 되어 그들은 "무뢰배를 모아 침탈행위를 한다"고 비난했던 것이다. 이방언 대접주는 6월 중순 이후에 읍내에다 도소를 만들고 때때로 수 천명의 동학도를 모아 위세를 과시하기도 하였다.『박기현일사(朴冀鉉日史)』에는 "장흥군 부산면(夫山面) 자라번지(鱉番地)에서 장흥 동학도들이 대회를 열었다" 하였고, "병영(兵營)에도 도소가 설치되어 있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대흥, 유치(有治), 웅치(熊峙)에도 도소를 설치하고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초기에는 강진읍에도 도소가 설치되었으나 보수세력이 강하여 그들에 밀려 9월 초에 한때 해체 당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9월 하순경에 인근 동학도들의 위세로써 다시 설치하게 되었다.『일성록』갑오 9월 조에 "군기현실(軍器見失)한 강진 전 현감 민창호(閔昌鎬)를 파원압상(派員押上)"하기를 청하는 기록이 있다. 6월 초경에 강진성이 동학군에 점령당했던 것을 문책한 것이다. 이 때 동학도소가 설치되었던 것이다. 그리고『박기현일사』에 "부친께서 수사당(守思堂)으로 피서 갔다 들으니 동학이라는 도인이 오늘 장흥 자라번지에서 모임을 갖고 각처 죄인을 잡아다 다스린다 하며 어제 저녁에는 산성 별장도 잡아갔다"고 하였다. 전라감사와 동학군 사이에 집강소를 설치키로 결정한 것은 6월 초순이며 군·현에 집강을 임명한 것은 6월 중순이다. 관의 기능이 공백상태였으므로 민원 처리와 죄인을 다스리고 관원의 잘못도 징치(懲治)한 것은 도소가 설치되면서 자연스럽게 그 임무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부산 대접주 이사경도 용반(龍盤)에 도소를 설치하고 수인산성(修仁山城) 별장을 잡아다 그가 저지른 비리를 다스린 것 같다. 읍에 설치된 집강소와는 별도로 대접주 산하에 설치된 도소에서도 집강소와 같은 업무를 집행한 것 같다. 장흥부사로 임명된 박헌양이 7월 그믐에 도임하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그는 하루 밤을 자고 8월 1일에 곧 유림들을 초청하여 향교로 가서 8월 초하루의 제례(朔香之禮)를 올렸다. 이 자리에서 동학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척사위정(斥邪衛正)을 강조하고 동학당을 제압할 방도를 논의하였다. 민심을 돌려놓는 것을 우선해야 한다며 각 면에서 학문이 깊고 덕망이 높은 사람(碩德之人)을 뽑아 훈장으로 삼아 강의할 수 있도록 뒷받침 해 주도록(捐 資給)하기로 하였다. 또한 무기를 수선하고 병사를 훈련시켜(修煉武備) 적을 감당할 수 있는 계책을 마련하자고 하였다. 장흥 부사가 부임한 후 동학당을 초멸하려는 움직임이 여러 면에서 눈에 띄게 나타났다. 박헌양 부사의 이러한 움직임은 독자적인 발상이라고 볼 수는 없다. 당시 김홍집 내각은 일본군을 앞세워 동학당을 초멸시키려는 계획이 있었다. 즉 일본군에게 군대를 출동시켜 동학당을 초멸하여 달라고 요청하였던 것이다. 한편 9월초에는 대원군으로 하여금 동학당을 효유하는 글(曉諭文)을 반포하게 하였고 때맞추어 박헌양은 장흥군내 대접주들을 불러다 귀화(歸化)하도록 권하기도 하였다. 이방언은 장흥군의 집강소 집강으로 입장이 곤란하여 동학지도부와 협의하여 겉으로 따르는 척 하였다. 그러나 웅치(熊峙)의 구교철(具敎徹)과 부산의 이사경(李仕敬, 仕京)과 대흥의 이인환은 단호히 거절하였다. 『장흥부사순절기』에는 "이방언을 불러 귀화하기를 바랬더니 방언은 이에 귀순하기로 아뢰었고 고을에 머물러 있던 나머지 도당들도 사라졌다. 적괴 구교철과 이사경은 끝내 듣지 않고 혹은 이웃 군 경내로 도망치거나 혹은 날뛰어 기포(起包)하기에 이르렀다"고 하였다. 당시 전봉준과 김개남 등 동학 지도부는 일본군을 몰아내기 위한 항일 전쟁 준비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특히 9월 18일(양 10월 17일)에는 충청도 청산(靑山)에서 신사(神師 海月 崔時亨)가 전국 동학군에게 항일전에 나서라는 기포령을 내렸다.『백범일지(白凡逸志)』에 의하면 "호랑이가 물러 들어오면 앉아서 죽을까. 참나무 몽둥이라도 들고 나서서 싸우자"며 기포령을 내렸다 한다. 이에 따라 10월 12일부터 15일 사이에 전봉준, 김개남, 북접 손병희는 수 천명의 동학군을 이끌고 공주와 청주를 향해 북상하기 시작하였다. 장흥·강진·영암 동학군들도 신사의 기포령에 따라 10월 10일부터 기포하기 시작하였다.『박기현일사(朴冀鉉日史)』10월 16일조에는 이 때 "동학도들은 장흥 사창장터(社倉市)에 천여 명이 모였으며, 영암 덕교(德橋)와 강진 석전장(石廛市)에도 계속 모여들었다"고 하였다.『장흥부사순절기』에는 "교철(敎徹)의 무리가 지금 웅치에서 재산을 약탈하고 인명을 살해하고 있다" 했으며,『유륙재유고(有六齋遺稿)』에는 "웅치면에 적도들이 상주하며 약탈과 살상을 일삼는다" 하였다. 아마도 장흥 부사의 귀화 권유를 물리친 유치·부산·웅치 동학군들은 전주의 대도소의 명령에 따라 기포하였던 것 같다. 박헌양은 동학군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자 공격을 결심하고 우선 병영으로 직접 찾아가 병마절도사 서병무(徐丙懋)에게 힘을 합쳐 나서자고 요청하였다. 그러나 병사는 확답을 피하였으며 병력 지원도 불응하였다. 10월 15일이 되자 웅치에 모인 동학군은 1천명이 넘었다. 나주목사 민종렬(閔種烈)을 모방하려던 박헌양(朴憲陽)은 수성장 임창남(任昶南)에게 수 백 명의 병졸을 이끌고 가서 초멸하라고 명령하였다.『장흥부사순절기』와『유륙재유고』에는 "구교철이 웅치면에서 백성들의 재물을 약탈하고 인명을 살해한다는 말을 듣고 수성별장 임창남(任昶南)으로 하여금 관군을 끌고 가서 토벌케 하니 이겼다(得捷)"고 하였다. 사살자 수와 피해를 준 사항이 기록에 없는 것으로 보아 싸우지도 못하고 돌아왔던 것 같다. 10월 19일부터 벽사역 찰방·장흥부사·강진현감·전라병사들은 일제히 동학군을 잡아들이기 시작하였다. 물론 동학세력 때문에 많은 인원을 잡아들이지는 못했으나 읍 소재지나 병영에 거주하던 적지 않은 동학군이 집을 헐리거나 곤욕을 당하는 일이 있었다. 한편 장흥과 강진 수성군은 총기를 수선하고 병정을 훈련시키는 데 여념이 없었으며 특히 병영에서는 병력을 보강하고 병기를 수선하고 조련을 서둘렀다.『박기현일사』10월 18일조에는 "수성소로부터 여러 곳에서 민군(民軍) 수천을 징발하여 왔으며, 이들을 병영 장대에서 조련하는 광경을 보았다"고 하였다. 한편 병사는 순무영에 병력 지원을 요청하기도 하였다. 동학군 측에서도 무기를 확보하고 군량미를 조달하며 대군을 출동시킬 준비에 나섰다. 그런데 웅치, 장동(長東), 부산, 유치 동학군들이 모였으나 천여 명에 지나지 않았으며 총기 또한 태부족이어서 관군과 대적이 안되었다.『박기현일사』는 "10월 16일 … 저녁에 집에 내려와 들으니 동학군들이 장흥 사창 장에 모인 자가 천여 명이라 하며 그리고, 영암 덕다리(德橋)와 강진 석전장(石廛市)에도 각기 모여들고 있다"고 하였다. 장흥 수성군과 벽사역의 역졸, 전라병사 휘하의 병영군까지 동원하면 무장 관군은 3천명이나 되었다. 보다 많은 병력과 무기가 필요한 장흥, 강진 동학지도부는 생각 끝에 멀리 금구(金溝) 지역 동학군에게 지원을 요청하게 되었다. 11월 초순경으로 여겨지는데 익산군 함열(咸悅)에서 기포한 김방서(金邦瑞)에게 사람을 보냈다.『동학사』에는 "강진, 병영과 장흥부에서는 관리배들이 다시 발호하여 동학당을 침벌(侵伐)한다는 급보가 대본영에 들어왔었다. …좌우로 더불어 의논할 즈음에 금구 대접주 김방서가 그것을 정복시키겠다고 일어섰다. 그래서 김방서는 3천 군을 거느리고 바로 남방으로 향하여 내려가니라"고 하였다. 전봉준 동학군은 공주전투에 사활을 걸고 있는 상황이었으므로 대본영 운운한 이 기록은 사실과 다르다. 장흥에서 보낸 특사는 11월 초순경에 직접 김방서 대접주를 찾아가 원병을 요청한 것이 틀림이 없다. 동학군이 바삐 움직이자 강진 현감은 이를 감지하고 불안하여 순무영에 병력을 요청하였다.『순무선봉진등록』11월 13일조에 "강진현감이 지난 달(10월) 29일에 올린 보고가 11월 9일에 당도하였다. 문서의 요지는 본읍 비류(동학군)에 대해 읍의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우니 병력을 파견(分兵) 토벌하여 달라"는 것이었다. 장흥에는 벽사 역졸이 수 백 명이나 되었고 병영에는 천여 명의 영병이 있었다. 그러나 강진현에는 수성군이 기백 명 정도에 지나지 않아 불안했던 것이다. 별다른 충돌 없이 1개월이 지나자 동학군은 장흥 관아를 공격하기 위해 11월 하순부터 보성과 웅치로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그 중 대흥 대접주 이인환(李仁煥)은 천여 명을 이끌고 진격하였다. 고읍을 거쳐 남면으로 진격하여 위세를 떨치고 다시 회령(會寧)으로 진격하였다. 이인환 대흥 대접주가 강력한 동학군을 편성한 것은 스스로 무기를 제조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박헌양 부사는 이 소식을 듣고 수성장을 급히 출동시켰다. 동학군을 대하고 보니 수적으로 월등할 뿐만 아니라 무기도 제대로 갖추고 있어 병졸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다. 싸움이 시작됐으나 얼마 가지 못하여 수성군은 후퇴하여 돌아 왔다.『천도교회월보』에는 이인환 대접주의 기포 광경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내가 일곱 살 먹던 그 해(갑오)다. 봄부터 우리 마을에는 동학 열이 심하여 집집마다 청수단(淸水壇)을 만들고 낮이나 밤이나 주문 소리가 흡사 글방에서 글 읽는 소리 같았다. … 하루는 접주 이인환 씨가 거정리(巨井里) 들판에서 동학군 대모임을 한다고 한다. 어른은 물론이요 부인 아동까지도 구경을 간다고 한다. 아버지도 가시고 삼촌도 가시고 할머니도 가신다고 한다. 나도 가겠다고 선두에 나섰다.
… 얼마 후에 접주 이인환 씨가 기포령을 내렸다. 이 기포령이 한번 발하자 어쩐 일인지 사람들이 물끓듯하였다.… 대장기(大將旗) 아래 청수를 모시고 주문을 세 번 고성 대독(大讀)하니 그 웅장한 소리는 저절로 강산초목이 동하는 것 같았다. 식이 끝나자 나팔소리에 따라 대군은 동한다. 저 건너편 이인환씨 본진에서 행군 나팔을 불고 서로 응성(應聲)하여 나간다."
수성장으로부터 적의 세력이 너무 커서 실패했다는 보고를 받은 박헌양은 분노를 금할 수 없어하다가 다시 수성군을 출동시켰다. 때 마침 병영으로부터 수 백 명 원병이 도착하여 이들과 같이 웅치로 갔다. 동학군은 웅치가 협착하여 잠시 보성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수성군과 병영병은 웅치에 이르자 동학군이 보성으로 이동한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돌아 왔다. 당시 보성군수 유원규(柳遠奎)는 동학 접주 박태로(朴泰潞)와 친밀한 사이로 서로 돕는 사이었다. 동학군은 안심하고 이 곳에 머물면서 장흥부성을 공격할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이에 앞서 장흥부사 박헌양과 병영의 서병무(徐丙懋) 병사, 그리고 벽사 찰방 김일원(金日遠)과 강진현감 민창호(閔昌鎬)도 동학군의 위세를 듣고 서둘러 대비책을 마련하였다. 『박기현일사』에는 "장흥부사가 동학도 수 천명이 웅치에 집결, 장흥을 치려한다며 별포 5백 명과 조총 2백 자루를 청해왔다. 병사는 이를 모두 불허했다" 한다. 그 뒤에 "장흥으로부터 급보가 있어 도통장 윤권중(尹權中)과 수성별장 방관숙(房管叔)으로 하여금 2백의 군졸을 이끌고 가서 구하라 했으며 본읍군 2백도 같이 갔다"고 하였다. 그런데 23일조에 "도통장이 장흥으로부터 환군(還軍)했다"고 하였다. 한편 동학군 측은 모든 일이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었다. 금구와 화순, 능주 등지에서 11월 말경에 5천여 명이 도착하였고 장흥 동학군들도 5천여 명이나 모였다. 동학군은 드디어 관군을 무찌르기 위해 출동하니 12월 1일에는 북면 사창(社倉, 장평면 용강리 2구)으로 진출하였다.『유륙재유고』에는 "12월 1일 적들은 보성 등지에 다시 모였다가 북면 사창으로 나왔다. 대접은 만 여이고 소접은 6∼7천이다. 모인 적도는 금구, 화순, 능주의 여러 적도들이다"고 하였다. 동학군의 수가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으나 실지 병력 수는 1만 명 정도였다고 본다. 『장흥부사순절기』에는 좀더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인근에서 널리 불러들인 여러 적들은 12월 1일에 보성에서 사창 땅으로 나와 주둔하였다. 대접은 만 여이고, 소접은 2∼3천이었고 금구 거괴 김방서, 화순 괴수 김수근(金秀根), 능주 거괴 조종순(趙鍾純)이 병력을 이끌고 왔다. 이 때 이방언도 급히 병력을 일으켰다"고 하였다. 황현(黃玹)은 "이방언, 이사경, 이인환, 백인명(白寅明), 구교철 등이 회령진에 모이니 그 무리는 수만이었다"고 하여 역시 표현을 과장하였다. 금구에서 수 천명이 보성까지 오자면 6일간은 걸렸을 것이므로 금구에서 출발한 날짜는 11월 23일경이라고 여겨진다. 일단 화순에 와서 김수근(金秀根) 접주와 합류하였고 능주에서는 조종순(趙鍾純) 접주와 합류하였다. 1만 명이란 엄청난 병력을 확보한 동학군은 12월 1일부터 드디어 벽사역을 비롯하여 장흥관아, 강진관아, 병영을 공격할 계책을 세우고 일단 사창으로 진출하였다.
2. 벽사, 장흥, 강진, 병영 점령
12월 3일 아침 사창으로부터 벽사역 인근으로 진출한 동학군 1만여 명은 초막을 치고 야영에 들어갔다.『장흥부사순절기』에는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이방언은 송정등(松亭嶝, 장흥 남쪽)에, 이인환(李仁煥)과 구교철(具敎徹)은 건산리(巾山里) 뒤 등성이에, 김방서는 벽사 뒷뜰에, 이사경(李士京)은 행원리(杏園里) 앞벌에 진을 쳤다. 이 광경을 본 관군과 관리들은 마치 천둥 바람과 같은 세력에 밀려 무너져 달아날 바를 몰랐다"고 하였다. 놀란 벽사역 찰방 김일원(金日遠)도 저항해 볼 생각은 접어두고 12월 3일 저녁에 가족들을 이끌고 장흥 부중으로 피신하였다. 이 곳도 불안하자 청병을 빙자하여 병영으로 갔다가 다시 나주로 도망갔다. 12월 4일 새벽(8시경), 드디어 공격명령이 떨어지자 동학군은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벽사역관에 포격을 가했다. 이미 역졸들은 도망가 버려 저항하는 세력이 없어 단숨에 점령하고 말았다.『장흥부사순절기』에는 "4일에 벽사역 공해와 민가는 적들의 화포로 모두 불에 타 재가 되었고, 불길과 연기는 하늘을 덮고 들을 메우니 사람들은 넋을 잃었다"고 하였다. 벽사도(碧沙道) 찰방역참(察訪驛站)은 성채가 아닌 평지에 있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점령할 수 있었다. 이 날 저녁 장녕성(長寧城) 동문 문루에 올라가 벽사역이 불타는 광경을 바라보던 박헌양 부사와 관리들은 뜬눈으로 밤을 새우며 방어책을 강구하였다. 장녕성은 서남쪽과 북쪽은 가파른 산으로 둘러 있고 동쪽이 터져 있지만 높은 목책을 쌓아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당시 장녕성을 지키던 수성군의 수는 1천여 명으로 추산된다. 박헌양은 성채가 견고하여 수성군이 분전하면 방어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성안 백성들은 넋을 잃지 않은 이가 없었다"고 했듯이 관민이 모두 사기가 떨어져 있었다. 박헌양은 동문루에 올라 장병들을 격려하며 방어에 임하였다. 12월 5일 새벽 동학군은 어둠 속을 헤치고 장녕성(長寧城)을 동서남북으로 에워쌌다. 동이 트자 한 방의 포성을 신호로 함성을 지르며 성벽에 달라붙었다. 제일 먼저 북문(連山里 소재)이 무너지자 사방에서 성을 타고 넘어갔다. 당황한 수성군은 달아나기에 바빴고 이 광경을 본 박헌양은 문루에서 내려와 동헌으로 들어갔다. 1시간만에 장녕성은 동학군의 수중에 들어갔다.
이튿날 새벽 박헌양은 다시 문루에 올라 적진을 살펴보았다. 방포하는 소리가 난 후 (일부 동학군이) 곧바로 북문을 넘어오자 나머지 적들도 사면에서 난입하여 온 성안이 불길에 휩싸였다. … 부사는 관군의 도움을 받아 곧바로 동헌으로 내려갔다. 적들이 쫓아와 난동을 부리다가 소매 자락을 잡아당기며 인부(印符)를 찾았다. 부사는 흔들림 없이 버티고 서서 성을 내며 꾸짖기를 나는 왕명을 받은 (장관으로) 인부는 내가 간직하고 있다. 너희들이 어찌 탈취하려 하는가 하며 꾸짖기를 그치지 않았다. 적은 (부사를) 억눌러서 동문 밖 장터로 끌고 가 무엄하게 창을 휘두르고 총포를 쏘며 위협하였다. 부사는 정색하고 바르게 앉아 조용히 최후를 마치니 12월 5일이었다. 동학군의 공격을 막다가 희생된 수성군 장졸의 수는 96명이다. 전사자가 대부분이고 붙잡혀 항거하다 살해당한 이도 있었다. 특히 기실(記室, 부사 측근에서 기록을 맡았던 벼슬) 박영수(朴永壽)와 수성별장 임기남(任璂南, 昶南), 통장(統將) 주두옥(周斗玉), 호위장(護衛將) 주열우(周烈佑)도 같이 희생되었다. 부사의 시체는 동문 밖에 버려져 있다가 동촌(東村)의 어떤 청상과부가 거두어서 보이지 않는 곳에 묻어 주었다 한다. 전사자 96명은 다음과 같다. 朴憲陽 朴永壽 任璂南 周斗玉 周烈佑 金昌祚 (이하 가나다 순) 金甲錄 金奎華 金基三 金德敏 金德孫 金明叔 金文祚 金民祚 金秉燁 金分實 金錫賢 金陽均 金連祚 金英萬 金有信 金益斗 金柱立 金柱五 金俊三 金天祺 金靑吉 金靑山 金七斗 金泰佑 金興斗 金喜鎭 朴在奎 朴八洪 徐官宗 徐允叔 孫玟敦 孫奉圭 孫奉植 孫誠模 孫汝根 孫昌國 宋洛鎭 宋承默 宋在燮 宋在永 宋在完 申東信 申東采 申應淵 申應兌 申千同 申鉉立 申鉉燮 梁圭化 嚴喜敎 呂甲燮 呂東根 呂東允 呂武燮 呂亨鐸 吳萬吉 吳夫祚 吳春伴 吳必根 吳學仁 李俸柱 李成民 李永斤 李太文 李洪瑞 李化珉 任炳琡 任炳元 任益先 任正華 任泰玉 張洛道 張同石 張順三 鄭升文 趙金巖 趙福巖 趙奉國 趙漢吉 周夢吉 周福鉉 周奉默 周伊勳 周点順 周昌英 周采坤 崔誠斗 崔應倫 崔定斗 河永巖. 12월 6일 10시경에 동학군은 일단 벽사역 일대로 돌아와 점심을 마치고 하오 2시경에 강진으로 출발하였다. 선발대는 15리 지점인 군동면(郡東面) 금천(錦川)에 유숙하였고 후발대는 10리 지점인 사인점(舍人店) 앞뜰에 초막을 치고 유숙하였다. 새로 부임한 강진 현감 이규하(李奎夏)는 장흥이 함락되었다는 보고를 받자 급한 나머지 6일 새벽에 병영으로 달려가 원병을 요청하였다. 서병무 병사가 난색을 표하자 나주(羅州) 순무영(巡撫營)으로 달려가 청병하였다. 역시 상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며 어렵다고 하였다. 강진현 관민들은 동학군이 밀려오자 우왕좌왕하며 혼란에 빠졌다. 이 때 도통장(都摠長) 김순채(金順采)와 김용현(金龍鉉) 그리고 보암(寶菴) 도통장(都摠長) 김한섭(金漢燮)이 장졸들을 격려하며 방어에 나섰다. 이날 아침 안개가 자욱하여 지척을 분간 할 수 없었다. 수적으로 우세한 동학군은 8시경에 안개를 이용하여 성밑까지 다가갔다. 얼마간 ㅇ9 측은 고함을 질렀으나 포성이 요란해지자 백성과 병졸들은 도망치기 시작하였다. 결국 동문과 남문이 무너지면서 읍성(邑城)은 손쉽게 동학군의 수중에 들어갔다. 7일 진시(8시경)에 적도들이 … 성밖 5리쯤 사면에 진을 쳤다. 장리(將吏)와 별포(別砲)들은 군민을 단속하여 성을 등에 지고 싸우려 하였다. 어찌 읍운(邑運)이 불행함인가. 안개가 짙게 깔려 … 사방이 가리어 지척을 분간할 수 없게 되었다. 적진에서 포성이 울리자 순식간에 성은 포위되었고 그들은 "죄 없는 백성과 병졸들은 모두 성밖으로 나오라. 만일 이속과 별포와 뒤섞여 죽을지 모른다"고 외쳤다. 군중들이 흩어지기 시작하자 이 때에 적도들은 달려들어 성을 함락해 버렸다. 전투는 1시간만에 끝났고 별포 그리고 의병들이 전사했으며 도총장 김한섭도 총탄에 맞아 전사하였다.『선봉진일기』에는 "7일 진시(辰時)경에 동도 만여 명이 장흥에서 내려와 사면에서 돌입하여 성이 함락되자 민가는 불 타버려 남은 것이 없었다. 장리·별포·수성군과 성중 인민들은 포살 도륙 당하여 살아 남은 사람이 없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앞서『선봉진정보첩』에서 본 바와 같이 동학군은 공격에 앞서 무고한 백성들이 피해를 입지 않게 하기 위하여 빠져 나오도록 조치하였다. 『오하기문』에는 "의병장 김한섭(金漢燮)이 전사했으며 그 제자인 김형선(金亨善)을 비롯하여 사인(士人) 김용현(金龍鉉), 좌수 윤종남(尹鍾南), 현리 김봉헌(金鳳憲), 황종헌(黃鍾憲)도 같이 전사하였다"고 하였다. "김한섭은 고산(鼓山) 임헌매(任憲梅)의 문하로 호를 오남(吾南)이라 하였으며 헌매가 지어주었다 한다. 그는 본디 이방언과 동문수학한 사이로 방언이 적에 물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타이르는 글을 보냈으나 끝내 듣지 아니하자 절교한다는 글을 다시 보냈다 한다. 또한 동학을 경계하는 글을 지어 사람들을 효유하기도 하였다 한다. 동학군의 다음 목표는 병마절도사가 있는 병영(兵營)이었다. 12월 10일로 정하고 9일부터 강진에서 병영 인근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오하기문』에는 "9일에 적은 장흥, 강진, 보성 경계 지점에 나누어 주둔하고, 서로의 거리는 10리, 20리 정도였으며 각기 수 천명씩 거느렸고 포성을 서로 들을 수 있었다. 병영군은 감히 출전하지 못하고 성안에서 지키려 하였다. 성 둘레에는 목책을 단단히 설치하고 방비하였다. 이날 밤에 적인 이인환이 서쪽 10리에 있는 군자리에 진을 쳤다. 장흥 부리(府吏)인 박창현(朴昌鉉)이 수성도총(守城都摠)으로 차임(差任)된 윤형은(尹衡殷)에게 포군 3백 명을 얻어 역습하려 했으나 들어주지 않았다"고 한다. 병영 공격은 장흥과 강진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적어도 전라 병마절도사가 있는 곳이며 병력의 수로 보나 질로 보나 장흥·강진 수성군과는 달랐다. 다만 동학군에 유리했던 것은 영병들의 사기가 땅에 떨어져 싸울 의욕이 없었다는 점이다.『박기현일사』12월 9일조에 "조반을 먹고 잠시 수성 상태를 돌아보니 수성군 거의가 겁에 질려 어찌할 줄을 모르고 있었다. 수성장 방관숙(房管叔)과 도통장 윤권중(尹權仲)은 교사하고 무능하여 제 살 길만 찾는 자들이었다. 군무에 무지 무능한 병사(兵使)도 이들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뒷전에 물러나 있으니 수성할 대책이 없었다. … 지금 적도들은 군자리(君子里)에 결진(結陣)해 있으며 내일 병영에 쳐들어갈 것이다"고 하였다. 또한『오하기문』12월 10일조에는 우후 정규찬이 남관(南關·강진, 병영 사이에 있는 요지)이 지세가 험한 요충이니 그 곳을 먼저 차지하면 수만의 적이라도 막을 수 있으니 정예 포병 3백 명을 차병(借兵)하여 달라고 하였다. 그러나 병무는 "병영도 방어하기 어려운데 남관을 어찌 알겠는가"며 역정을 내었다 한다. 또한 부리(府吏)인 박창현(朴昌鉉)이 도총 윤형은(尹衡殷)에게 이인환(李仁煥)이 군자리에 유진하고 있으니 포군 3백을 차출, 기습하자고 하였으나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다. 결국 12월 10일 새벽에 수 천명 동학군은 사방에서 진격하여 병영성(兵營城) 동쪽의 세 봉우리를 점령하였다. 그리고 포격을 하니 화약 냄새와 화염이 하늘을 덮었다. 이 때 피난민은 일제히 밀려나왔으며 이 틈에 서병무 병사는 수성을 포기하고 피난민 속에 섞여 영암으로 빠져나가 원병을 요청하였다 한다. 『오하기문』은 "서병무가 크게 놀라 소매 좁은 두루마기 차림으로 해 가리개를 쓰고 옥로(玉鷺, 갓 머리의 옥장식)는 떼어 감추었으며 인부(印符)를 가슴에 품고 짚신 신발로 피난민과 섞여 성을 빠져나가 영암으로 달아났다"고 하였다. 남은 장졸들은 사기가 떨어져 싸울 생각을 못하였다. 우후 정규찬·감관(監官) 김두흡(金斗洽)·전 도정 박창현·군교 백종진·수성도감 부리 윤형은 장병들을 격려하며 앞장섰다. 동학군은 10시경에 먼저 목책에 불을 질러 온통 불바다를 만들고 삼면에서 함성을 지르며 물밀 듯이 공격해 들어갔다. 병사가 도망친 것을 알고 있는 영병들은 앞다투어 도망쳐 버렸다. 우후 정규찬을 비롯하여 감관 김두흡, 군교 백종진, 전 도정 박창현 등이 분전하였으나 처절하게 전사하였다. 『오하기문』에는 "사태를 수습할 길이 없자 규찬은 적진에 들어가 전사하였고, 창현은 검으로 수 십 인을 참하고 나서 적탄에 맞아 쓰러졌다. 두흡은 군기고를 지키다 적이 화약을 탈취하러 오자 화로를 안고 화약더미로 들어가 폭사하니 적 9명도 같이 죽었다"고 하였다. 『오하기문』에는 "사태를 수습할 길이 없자 규찬은 적진에 들어가 전사하였고, 창현은 검으로 수 십 인을 참하다 적탄에 맞아 쓰러졌다 다시 일어나 발포자를 죽이고 절명하였다. 두흡은 군기고를 지키다 적이 화약을 탈취하러 오자 '화약이 없으면 적도 죽으리니 내가 죽는 것은 적을 죽이는 일이다'며 화로를 안고 화약더미로 들어가 폭사하니 적 9명도 같이 죽었다"고 하였다. 병영 전투는 정오에 동학군이 완전히 장악하자 막을 내렸다.
3. 석대벌의 최후 결전
병영을 점령한 동학군은 그 여세를 몰아 영암까지 진출하려 하였다. 그러나 일본군과 관군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장흥으로 철수하였다. 벽사·장흥·강진·병영이 동학군 수중에 들어갔다는 급보로 후비보병독립제19연대(後備步兵獨立第19聯隊) 대대장인 남소사랑(南小四郞)은 즉각 병력을 파견하였다. 나주에 있는 대대본부에서 내린 명령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① 적은 지금 영암(靈巖)·강진(康津) 등지에 있다. 내일 석흑광정(石黑光正) 대위는 1개 소대와 2개 분대를 영솔하고 교도중대(敎導中隊) 2개 분대와 같이 오전 8시에 출발, 영암을 거쳐 강진의 적을 토벌하라.
② 제1중대에서 1개 소대를 차출하여 능주(綾州), 보성(寶城)에 먼저 갔다가 장흥 부근을 거쳐 강진의 적을 공격하라.
③ 백목(白木) 중위는 부하 병력과 교도대의 나머지 병력을 인솔, 오전 8시에 출발하여 원정(元亭)을 거쳐 장흥부근을 지나 강진의 적을 공격하라. 단 제2중대 및 제3중대와 맞추어 포위 공격하라.
④ 통위 대대장 선봉장은 부하 2백 명을 영솔하고 내일 아침 8시에 출발, 무안→목포→주룡포→남리→해남에 이르는 연로를 수색하여 적도들을 체포하라. 만일 거괴(巨魁)를 체포하거든 정토군 본부(나주)로 보내라. 엄히 당부할 일은 민재를 약탈하거나 보교를 타고 가는 두 가지 일은 절대 금해야 한다.
⑤ 통위영 30명과 사관 2명을 능주에 있는 제1중대에 증원토록 하라.
나주에서 일본군과 경군은 세 갈래길(三路)로 강진을 향해 내려오고 있었다. 영암을 거쳐 온 석흑광정 대위와 교도대는 12월 12일에는 병영에 나타났다.『박기현일사』12월 12일조에 "경군과 일본군 170∼180명이 내려왔으며 동학군은 이미 도주하여 병영에는 없었다"고 하였다. 경군은 교도중대로 2개 분대인 약 30여 명 정도였고 나머지 150∼160명은 석흑(石黑光正) 대위가 이끈 일본군이었다. 석흑 대위는 1개 소대와 2개 분대를 이끌고 왔다면 80명 정도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150∼160명을 이끌고 왔으므로 병력 수가 맞지 않는다. 그는 제19대대 제3중대장이었으므로 1개 소대와 2개 분대만 이끌고 오지 않았을 것이다. 한편 12월 11일에 나주를 출발한 일본군 제1소대 50명과 통위영 교장 황수옥(黃水玉)이 이끄는 30명의 경군은 능주에서 일박하고 12일 새벽에 장흥 땅을 밟았다. 황수옥은 "11월에 나주를 떠나 30명의 병사를 이끌고 능주에서 일박하고 12일 오경(五更, 새벽 5시경) 때 장흥에 도착 일박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능주에서 통위영 병사 30명과 사관 2명을 증원 받은 것 같다. 그리고 백목(白木誠太郞) 중위가 이끄는 일본군 50명과 교도중대 30명은 원정(元亭)을 거쳐 15일에 장흥으로 들어왔다.『동학당정토약기』에 "3개 지대 중 우측 지대는 강진에서 비도와 싸우느라 약간 늦어졌으며, … 강진에서의 격전은 결국 장흥의 적 격퇴에 크게 이바지하였다"고 하였다. 강진 어디서 전투를 하였는지 기록이 없다. 장흥에 집결한 경군과 일본군은 경병이 약 120명, 일본군이 약 250명으로 모두 370명 정도였다. 여기서 한가지 언급할 것은 영암과 해남 동학군의 동태이다. 벽사와 장흥·강진이 함락되자 영암·해남 동학군들도 천여 명이 기포하여 관아를 공격하려 하였다.『순무선봉진등록』에는 "7일에 강진을 연달아 함락하자 그 여세가 더욱 창궐, 본읍(영암)도 침범하리라 하니 성중 이민(吏民)이 힘을 합쳐 주야로 방비에 힘을 기울이고 있으나 중과(衆寡)의 세가 커서 걱정이 많다"고 하였다. 김재계의『교회사』에는 병영을 공격할 때 이미 영암 동학군들도 참가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천도교회사초고』와『천도교서』에는 "양빈(梁彬)·신란(申欄)·최영기(崔永基)가 기포했다" 했으며,『순무선봉진등록』에는 주성빈(朱成彬)·강군오(姜君五)·김순범(金順凡)·정용달(鄭用達)·김순천(金順天)·김권서(金權西)·박맹룡(朴孟龍) 등이 기포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들은 약 1천여 명을 동원하여 장흥·강진 동학군과 합세하여 영암 군수 남기원(南起元)과 수성장 하태명(河泰命)을 항복시키려 했으나 12일에 일본군이 오게 되어 실패하고 말았다 한다. 앞서 병영이 위태롭게 됐을 때 서병무 병사는 7∼8차례나 영암에 파발을 보내 포군 징발을 명령하였다. 그 때마다 영암 군수는 이에 응할 수가 없었다. 영암 동학도들이 이미 기포하여 쳐들어 올 태세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병력을 다른 곳에 돌릴 여유가 없었다. 일본군이 2일만 늦었어도 영암성은 동학군의 수중에 들어갔을 것이다. 해남 동학군들도 병영이 함락되자 크게 고무되어 12월 18일에 수 천명이 기포하였다. 장흥 전투에서 밀려난 동학군들이 몰려가 지방 동학군들과 같이 기포한 것 같다. 이들은 19일 새벽에 공격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일본군과 통위영병이 밤중에 나타나 공격해 오자 격전이 벌어저 8∼9명의 전사하였다. 해남도 일본군이 하루만 늦게 왔더라면 동학군의 수중에 들어갔을 것이다. 병영에서 철수한 동학군은 두 지역에 나누어 있었다. 주력를 이루는 이인환·이방언 동학군은 남면 어산촌(語山村)에 주둔하였고 나머지 소수 병력은 장흥 남문 밖 건산(巾山) 모정등(茅征嶝)에 주둔하고 있었다.『유륙재유고』와『장흥부사순절기』에는 12일 저녁에 "소모관 백낙중(白樂中)이 이끄는 경병이 보성으로부터 와서 먼저 모정등 동학군을 공격하고 13일 새벽에는 남문 밖 동학군을 격파하였다"고 한다. 운봉 수성에 공로가 있어 호남 소모관으로 임명된 백낙중은 통위영 소속으로 30명의 병력을 이끌고 능주로 가서 일본군 제1중대에 합류하여 이곳으로 온 것이다. 황수옥에 의하면 12일에 장흥으로 와서 하루를 자고 13일 새벽에 일본군과 힘을 합쳐 몇 차례 공격하자 적들은 흩어졌다고 하였다. 그런데 백낙중이 단독으로 "13일 새벽에 남문 밖 동학군을 격파하였다"는 기사는 전후가 맞지 않는다.『오하기문』에는 나주에 있던 이규태가 병영의 급보를 받고 한 지대 병력을 먼저 출발시키고 백낙중과 더불어 병영으로 향하였다고 하였다. 도중에 김일원(金日遠, 벽사 찰방)을 만나 안내를 받아 병영에 갔으나 적은 이미 장흥 모정등(茅亭嶝)으로 퇴각하였다. 13일에 남문 밖 동학군의 기세를 보니 대단했으나 관군이 10여 발의 대포를 쏘자 패주하였다고 하였다. 이 기사도 역시 앞뒤가 맞지 않는다. 『동학당정토약기』에는 "좌측 지대(일본군 제1중대)에 소속되어 순회하던 소모관 백낙중이란 자 … "는 일본군을 따라 온 것으로 되어 있고, "이규태가 남해에 도착했을 때에 장흥·강진 전투는 이미 끝났다"고 하였다. 백낙중은 분명 능주에서 합류하여 황수옥과 같이 12일에 장흥으로 들어 왔으며 13일에 일본군과 함께 동학군과 싸운 것이 틀림이 없다. 동학혁명 중 최후 전투라 할 수 있는 장흥 지역 전투는 13일에 막이 오른 것이다. 뒤이어 15일에는 석대벌 전투, 17일에는 옥산촌(玉山村) 전투로 이어지면서 일본군의 야만적 살인행위가 시작되었다.『순무선봉진등록』에는 "13일 새벽에 적세를 탐지하니 남문 밖에 수 천명이 집결해 있었다. 일본군과 본영 병정 30명이 합세 공격하니 수합(數合)이 못되어 적은 사방으로 달아났다. 세차게 추격하여 20여 명을 포살하니 나머지는 죽을 힘을 다해 달아나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하였다. 화력이 약한 동학군은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남면 어산촌 본진으로 후퇴한 것이다. 어산촌(語山村)에 집결해 있던 이인환·이방언 대접주와 동학지도부는 여러 대책을 검토한 끝에 15일 새벽에 일본군을 공격하기로 하였다.『순무선봉진등록』12월 21일자 이진호(李珍鎬) 교도대장 보고에 의하면 12월 15일에 동학군은 일본군과 관군을 포위하고 맹공을 퍼부었다. 그러나 백목 중위가 일본군 지원부대를 끌고 오자 역습으로 바뀌면서 석대벌과 자울재에서 많은 동학군이 희생되었다고 하였다.
15일 … 장흥에 도착하여 … 부대를 주둔시키고 잠시 휴식하고 있었는데 뜻밖에 비류 3만 명이 봉우리 아래에서부터 북쪽 뒤골짜기 주봉에 이르도록 만산편야(滿山遍野) 수 십리에 걸쳐 봉우리마다 수목 사이에 깃발을 줄줄이 꽂고, 함성을 지르고 포를 쏘며 충살(衝殺)코자 날뛰는 기세가 대단하였다. 그러자 주민들은 허둥대며 어찌할 줄 몰라 분주하였다. 일본군 중위와 상의하여 통위병 30명(백낙중, 필자 주)으로 주봉의 적을 물리치게 하고, 본대 병정은 일본군과 같이 성모퉁에 있는 죽림(竹林)에 잠복하였다. 그리고 먼저 민병 30명을 출동시켜 싸우게 하여 들판으로 유인해 낸 다음 충성을 떨치려는 병졸들을 두 갈래로 나누어 총을 쏘며 공격하자 잇달아 (동학군) 전열이 무너지므로 전진 또 전진하여 공격하니 포살자가 수 백 명에 이르렀다. 노획물은 크고 작은 대포 4문과 회룡창 한 자루, 나머지는 활과 화살, 화약과 총탄 및 잡기들이었으며 모두 태워버렸다. 20리 지점인 자울재까지 추격하자 해는 서산에 걸려 있고 북풍 찬바람이 불어오고 병졸들은 허기진 기색이었다. 또한 남쪽을 바라보니 골짜기가 깊고 비스듬하게 구불구불한데다 대숲이 빽빽하여 잘못될 염려가 있어 곧 본진으로 철수하였다.
남면 어산촌에 집결해 있던 동학군 지도부는 병력 보강하기 위해 보성과 해남, 영암 동학군에게 지원을 요청하였다. 장흥, 강진과 합세하자 며칠 사이에 3만여 명으로 늘어났다. 북쪽에서 패전하여 밀려 내려온 많은 동학군들도 합류하였다고 본다. 15일 아침 선발대는 장녕성 북서쪽 산봉우리 일대를 차지할 수 있어 선제공격에 나섰다. 후속 병력도 계속 줄을 이어 들판을 메웠다. 당시 일본군 2개 지대 약 200명과 경군 60여 명은 장녕성안과 남문 옆 남산 봉명대에 진을 치고 있었다. 전투가 시작되자 강진으로부터 백목 중위가 일본군 60명과 교도대 약 30명을 이끌고 나타났다. 성암(聲菴) 김재계(金在桂)의 증언에 의하면 12월 15일에 어산촌에 본진을 둔 "이인환·이방언은 보성, 장흥, 강진, 해남, 영암 각 군의 포(包)를 합하여 … 북상(나주)을 도모하던 때에 정부군과 일본군이 장흥에 내주(來駐)했다는 소식을 듣고 … 수십만 동학군을 지휘하여 장흥읍으로 직충(直衝)하다가 석대벌(石臺坪)에서 결전을 벌였다"고 하였다. 처음에는 자신만만했으나 일본군의 계략에 빠져 산림지대에서 평지로 나오게 되자 전세는 불리하게 되었다. 월등한 화력을 가진 일본군과 경병은 동학군이 접근할 수 없는 거리에서 사격하니 당해낼 수가 없었다. 화승총과 창칼이 고작인 동학군의 무기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2시간이 지나자 동학군의 전열은 흩어지기 시작하였고 끝내 무너지고 말았다. 싸움터는 석대벌에서 송정리로, 다시 자울재로 옮기면서 약 4시간에 걸쳐 혈전을 벌였지만 수 백 명의 희생자를 낸 동학군은 패배하였다. 일본군과 경군은 날이 어둡자 추격을 포기하고 돌아갔다. 재기 불능에 빠진 이인환·김삼묵·윤세현(尹世顯) 등 대흥·관산 그리고 강진의 칠량, 대구 접주들은 장흥에서 남쪽 40리 지점인 고읍 대내장(竹川場, 玉山)으로 후퇴하여 다시 전열을 가다듬었다. 이들은 엄동설한에도 불구하고 4∼5천을 모아 최후의 결전을 벌이기로 하였다. 일본군과 경군은 17일 오후에 나타났으며 대내장에서 최후의 결전을 벌이게 되었다. 『순무선봉진등록』에 "17일에 출발하여 남면 40리 지점에 있는 대내장으로 향하였다. 남쪽을 바라보니 왼쪽에는 바다가 펼쳐 있고 산천은 험준한데 어찌된 일인지 비류 4∼5천명이 모였으며 옥산 일대에도 진을 치고 있었다. 때로는 함성을 지르고 때로는 포를 쏘며 여전히 날뛰니 해괴하고 통탄스러웠다. 대오를 정돈하여 일제히 공격하니 적의 무리는 크게 패하여 포살자가 1백여 명이요 생포자가 20여 명이나 되었다. 그 중 10여 명은 효유해서 방면하고 나머지는 포살하였다. 5리 남짓 쫓아갔으나 때마침 풍설이 대작하고 황혼이 깔리며 밤이 되어 곧 돌아 왔다"고 하였다. 관산읍에 사는 손동옥(孫東玉)의 증언에 따르면 "동학군과 일본군은 고읍천(古邑川)을 사이에 두고 3∼4시간 싸우다가 동학군이 패했다. 총소리에 놀란 옥산 주민들은 뒷산으로 피신하여 온 산이 백산이 되었다. 일본군은 이들에게 총격을 퍼부어 무고한 주민들이 많이 사살되었다"고 하였다. 여기서 패한 동학군은 해남와 진도쪽으로 피신했으며 대흥 대접주 이인환을 비롯하여 강진군의 대구·칠량 두 곳 동학군 두목들은 천관산(天冠山)과 여러 산중으로 숨어들었다. 성암 김재계는 석대벌 최후 전투를 다음과 같이 증언하였다.
아버지는 내가 자고 있는 밤중에 돌아오셨다. 그 이튿날 아침에 아버지께서 할머니와 이웃 사람에게 이런 말씀이 있었다. 이번에 보성·장흥·강진·병영을 함성하고 도로 남면 어산 앞에 와서 유진하고 있는데 본읍으로 소식이 오기를 경군과 일병이 본읍 남산 봉명대에 유진하고 있다 한다. 이 소식을 들은 수십만 군중은 일시에 더욱 흥분 되야 기세를 올리며 바로 석대평으로 남산을 직충할새 석대평을 거의 지나자 선군(先軍)이 퇴진을 해서 막았던 큰물이 일시에 터지는 것같이 사람의 물결은 말할 수가 없이 서로 남으로 동으로 흩어지기 시작한다. 십리 밖에까지 총알이 비오듯 전후좌우로 참벌 우는 소리가 나며 사람은 앞뒤에서 턱턱 거꾸러진다. 어찌할 줄을 모르고 갈팡질팡 산을 넘어 산으로 산으로 해서 어젯밤 자정 후에 집에 돌아 오셨다.
대내장에서 패한 동학군은 뿔뿔이 흩어져 일반 동학군은 자기 집 근처로 돌아와 숨었으나 지도급 인사들은 산으로 바다로 피신하였다. 일반 동학군은 체포되더라도 용서받을 수 있었지만 지도급 인사들은 체포되는 대로 살해되었다. 일본군과 관군뿐만 아니라 수구세력들이 일어나 민군을 조직하여 동학군을 수색하는 데 혈안이 되었으며 붙잡는 대로 학살하였다.
4. 일본군의 살인 행위
『동학당정토약기』에 의하면 장흥 전투를 계기로 일본군은 동학군을 무차별 학살하라는 엄명을 내렸다. 이것은 일선 일본군의 임의로 결정한 것이 아니라 일본 공사와 군 수뇌부가 결정한 살인방침이었다. 즉 "장흥·강진 부근 전투 이후로 많은 비도를 죽이는 방침을 취하였다. 이는 소관 한 사람의 생각으로 한 것이 아니라, 훗날에 재기할 가능성을 제거하기 위하여 다소 살벌하다는 느낌을 살지라도 그렇게 하라는 공사(公使)와 사령관의 명령이 있었기 때문이다. …장흥 근처에서는 인민을 협박하여 동학도에 가담시켰기 때문에 그 수가 실로 수 백 명에 달하였다. 그래서 진짜 동학당은 잡히는 대로 이를 죽여버렸다"고 하였다. 보고에 의하면 현지에서 처형한 인원은 해남 250명, 강진 320명, 장흥 300명, 나주 230명이라고 하였다. 이 지역 동학도들은 전라감사 이도재(李道宰)의 포악스러운 탄압으로 1896년 5월까지 무려 1천여 명 이상이 학살되었다. 장흥 지역의 혁명투사였던 이인환 대접주를 비롯하여 이방언·이사경·김삼묵 등 지도자들과 많은 동학도 들도 학살당하였다. 이인환은 천관산 굴속에 숨어 추위에 떨다가 1월 21일 밀고로 체포되어 나주 남문 밖에서 1895년 3월 27일(양 4월 21일) 향년 56세를 일기로 장살되었다. 이방언도 12월 25일에 체포되어 나주를 거쳐 서울까지 압송, 3월 21일에 재판을 받아 일단 풀려났으나 1895년 4월 22일(양 5월 16일) 이도재(李道宰)의 체포령으로 회천면(會泉面)에서 아들 이성호(聖浩)와 같이 체포되어 4월 25일 벽사역에서 57세를 일기로 부자가 포살되었다. 부산 대접주 이사경(李士京)은 용반리(龍盤里) 서쪽 기역산(騎驛山) 베틀바위에 숨었다가 1895년 1월 13일(양 2월 17일)에 체포되어 15일에 벽사역에서 포살되니 42세였었다. 이밖에 벽사역에서 사살된 동학지도자 중에는 관산 접주 김학삼(金學三)이 대내장 전투 후 12월 25일에 체포되어 27일에 42세로 순도하였고, 박치경(朴致京) 접주도 12월 26일 관산 지역에서 체포되어 28일에 순도하였으며, 또한 박채현(朴采鉉·現) 접주도 28일에 39세의 나이로 순도하였다. 박기현일사에는 병영에서 "12월 27일에 유치로 병정을 보내 동학군을 많이 잡아다 참형하였다. 이 때 도내 각 읍에서 동학군을 참형하지 않는 날이 없었다"고 하였다. 장흥 대덕 김재계는 <교사이문>에서 "이곳 저곳에서 사람들이 수군수군하며 인제는 다 죽는다고 야단들이다. '경군이 온다, 수성군이 온다, 민보군을 조직한다, 방수장이 났다, 수성막을 짓는다, 어느 곳에서는 한 동리가 함몰했다, 삼부자가 한 총에 죽었다'는 등 참으로 어수선하였다.…산으로 들로 다니며 을미년 늦은 봄까지 지냈다"고 하였다. 『천도교회월보』에는 강진 접주 절암(節菴) 윤세현(尹世顯)의 피신 경위를 다음 요지와 같이 기록하고 있다.
포덕 35년(1894) 4월에 동지 수십 인과 같이 고부 전봉준 혁명에 참가하였다가 7월에 강진으로 내려 왔다. 동년 11월에 장흥 이인환 접과 합세하여 일거에 보성, 장흥, 강진, 병영을 함락하였다. … 장흥 남문외 석대에서 … 12월에 관군에게 패배한 후 장총 하나를 들고 천개산, 백적산을 오가며 피신하였다. 어느 날 밤 하산하여 보니 삼간 집이 불타버렸다. 담장에 은신하여 살펴보니 처 양세화(梁世嬅)가 유아(아들 尹柱行)를 업고 세 살 여아를 안고 한기에 떨고 있는 것을 보았다. 돌을 던지니 양세화는 마을을 가리키고 산을 가리키며 다시 산으로 올라가라 하였다. … 절암장의 일가 70여 호는 화가 미치자 속히 포착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중형은 강진옥에 감금되고 처 양세화도 끌려가다 군리(郡吏)의 주선으로 풀려났다. … 나중에는 산에 불을 지르고 민군으로 산을 뒤지었다. 도저히 있을 수가 없어 월 여만에 피신 중이던 처남 양해일(梁海日)과 다른 사람 5∼6인과 같이 산을 떠나 배를 구해 타고 해남 방면으로 달아났다. … 포덕 38년 1월에야 고향으로 돌아와 장흥 대덕 연지리로 이사하여 동학운동을 다시 재개하였다.
결 론
장흥·강진 지역 동학도들은 4월부터 전봉준 장군이 이끄는 동학군과 합류하여 황룡강 전투를 비롯하여 전주성 함락에 참여하였다. 그리고 6월부터 내려와 도소를 설치하고 활동하였다. 10월부터는 항일전을 위해 기포하여 북상하려 하였다. 그러나 장흥 부사 박헌양의 주도로 벽사, 강진, 병영의 병력을 동원하여 탄압하려 하자 지방 보수세력과 싸우지 않을 수 없었다. 힘이 부족하자 금구 김방서 대접주에게 원군을 요청하여 12월 초부터는 벽사역·장흥부·강진군·병영 등을 모조리 공격하였다. 뒤이어 그 여세를 몰아 영암·해남도 점령하려 하였다. 그러나 일본군이 출동하여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 천추의 한을 남기게 되었다. 장흥·강진 지역에 동학 세력이 강하게 자리잡을 수 있었던 것은 민중들이 절대적인 호응이 있었기 때문이다. 장흥군은 부사가 통치하는 곳이요, 벽사역참은 많은 역졸을 거느린 찰방이 있던 곳이다. 그리고 강진현은 성리학으로 세뇌된 보수세력이 강했던 곳이며 병영은 전라도 병마절도사가 1천여 명의 병사를 거느리고 있던 곳이다. 이밖에 회진(會鎭)에는 만호(萬戶)가 있었다. 좁은 지역에 이처럼 권력기관이 많았으니 민중들의 생활은 고단했을 것은 뻔한 일이다. 조선왕조가 해체기를 맞은 극한상황에 이르러 동학군이 잘못된 나라를 바로잡고 백성을 평안하게 한다는 혁명의 깃발을 올리자 억눌렸던 민중들은 자연스럽게 동학의 산하에 모여들게 되었다. 일단 동학에 들어오면 양반 상놈이 없어지고 서로 존대하며 도와주고 모든 사람이 한울님처럼 대접받을 수 있는 새로운 삶의 틀을 만들어 가자는 미래 사회의 꿈을 제시하니 동학이야말로 민중들의 숭상해야 할 신념체계였다. 그런데 민중의 살 길을 가로막는 일본군이 나타나 나라의 주권을 강점하고 민중의 꿈을 짓밟아 버리자 동학지도부가 항일전에 나서라는 명령에 따라 장흥·강진 동학군은 목숨을 내맡기고 서슴없이 궐기하였던 것이다. 동학군의 주력이던 북쪽 동학군이 모두 패하여 해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장흥·강진 동학군들은 막강한 일본군을 물리치기 위해 힘겨운 공격에 나섰던 것이다. 12월의 궐기는 동학혁명운동에서 이 지역의 열기를 읽을 수 있는 역사적 사건이라 할 수 있다. 11월 11일에 전봉준 휘하의 동학군 주력과 북접 통령 손병희 휘하의 동학군이 공주 전투에서 무너져 원평에서 막을 내렸으며, 김개남 휘하의 전라좌도 동학군도 11월 13일 청주전투에서 패하여 해산하였고, 또한 나주를 포위했던 손화중 고창 동학군과 최경선 정읍 동학군이 12월 1일에 이미 해산하였다. 12월에 일본군과 싸운 곳은 전라도에서는 장흥·강진이고, 충청도에서는 신사와 손병희가 이끄는 북접군뿐이었다. 끝으로 이 지역 혁명운동에서 주목되는 것은 초지역적(超地域的)으로 동학군의 연대의식이 강했었다는 점이다. 멀리 금구 동학도들이 지원하려 내려왔고 화순·능주·보성 등지와 영암·해남 동학군들이 목숨을 건 끈끈한 연대의식은 역사의 귀감이다. 대부분의 동학군은 순박하기 이를 데 없는 농민들이었다. 이들이 보국안민의 깃발 아래 목숨을 던지며 연대할 수 있었던 것은 동학사상과 그 신앙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사진설명; 1894년 12월 15일 동학군이 일본군을 물리치기 위해 3만이 공격하였을 때 치열하게 벌어졌던 전투지인 장흥읍 석대벌 일대. 사진설명; (위) 1894년 12월 7일에 동학군이 점령했던 강진읍성의 일부. (아래) 전라병무절제사가 있던 병영자리와 영암 월출산 전경.
(교사교리연구 제 3호 - 포덕 140년 12월)
표 영 삼
머 리 말
장흥(長興), 벽사(碧沙), 강진(康津), 병영(兵營) 등 4개 처는 전라도 남단에 있는 요충지이다. 장흥은 부읍(府邑)으로서 중요한 위치에 있을 뿐만 아니라 고부민란 때 동학도를 자극한 이용태 부사가 부임하여 있던 곳이오, 벽사는 벽사도(碧沙道)를 관장하는 찰방이 있는 역참이며, 강진은 보수세력이 강한 곳이다. 또한 병영은 전라병마절제사(全羅道兵馬節制使)가 있는 군사적 요충지이다. 따라서 일반 민중들은 이들 권력기관이 묘여 있어 다른 지역에 비해 억압과 생활고가 심했었다. 이 지역에 동학 활동이 자리잡게 된 것은 1890년대부터이다. 1894년 4월(음) 경에는 수천에 이르렀고 전봉준(全琫準) 휘하 동학군이 혁명의 깃발을 올렸을 때에는 수 백 명이 달려가 합류하였다. 황토재 전투를 비롯하여 황룡촌(黃龍村) 전투, 전주성(全州城) 점령에 참가하여 큰 몫을 하였다. 5월(음) 하순에 고향으로 돌아와 대접주 단위로 도소(都所)를 세우고 활동했으며 6월 중순부터는 장흥·강진읍과 병영에 집강소를 설치하고 폐정개혁에 들어갔었다. 신임 장흥부사 박헌양(朴憲陽)이 7월 그믐에 부임하자 동학군과 보수세력 사이에는 긴장감이 돌았으나 8월에는 별다른 마찰이 없었다. 그러나 9월 중순에 이르러 대원군이 효유문을 반포하는 한편, 김홍집 내각과 일본군이 동학군을 초멸(剿滅)할 정책을 세우자 양측의 대립은 점점 더해 갔다. 결국 11월에 금구(金溝) 동학군의 지원을 받아 12월 4일에 벽사역참(碧沙驛站)을 불태우고 5일에는 장녕성(長寧城)을, 8일에는 강진성(康津城)을 10일에는 병영(兵營)의 전라병영까지 불태워 버렸다. 그리고 12월 12일부터 일본군과 경병이 장흥에 들어오자 이를 물리치기 위해 3만여 동학군은 12월 15일에 일본군을 공격하다가 석대벌(石臺坪)로 후퇴하면서 엄청난 희생자를 내고 말았다. 12월 17일에는 관산 대내장(竹川場) 전투를 끝으로 장흥 지역 동학혁명운동은 막을 내리게 되었다. 이 지역의 혁명운동 과정을 살펴보기로 한다.
1. 동학 조직과 집강소
장흥·강진 지역에 동학이 들어온 시기는 무척 오래 된다. 장흥군(현 보성군) 웅치면 강산리(江山里)의 박병락(朴炳樂) 부부(부인, 文方禮)는 1864년 7월 7일에 입도한 것으로 되어 있다. 장흥종리원 천도교보(天道敎譜)에 의하면 박병락은 1852년 생이고, 문방례는 1860년 생이므로 13세와 5세에 입도한 셈이다. 아마도 그들의 부친인 박재성(朴在成)과 문성기(文成基)가 1862∼3년에 대신사 재세 당시에 입도하여 세대에 걸쳐 전해 진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관산면 송촌리(松村里) 527번지 이순홍(李順洪)은 1882년 10월 3일에, 남면 운주리(雲柱里) 손관익(孫寬益)은 1884년 10월 10일에 입도하였다. 1935년에 작성된 교보이므로 오래된 원로 도인들이 환원하여 기록에서 누락되었을 것으로 보아 1880년대 초에 상당수의 입도자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지도급 인사들이 집단적으로 입도한 시기는 1891년부터이다.『장흥군종리원』연혁에 의하면 "포덕 32년(1891) 신묘(辛卯)에 본군 이인환(李仁煥), 이방언(李邦彦), 문남택(文南澤) 제씨가 교문에 입하다. 시시에 장흥, 보성, 강진, 완도 각 군에 포덕이 대진하여 신도가 수만에 달하다"고 하였다. 지식인들이 몰려들자 장흥 지역의 도세는 급격히 늘어났다. 그리고 강진에 동학이 들어 온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강진군 대구면(大口面)의 윤세현(尹世顯)이 입도한 시기가 1891년이며 장흥 대덕과 생활권이 하나이므로 아마도 장흥 지역을 거쳐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물론 1890년 전에 입도자가 있었을 것이나 마량, 칠량, 군동, 작천, 병영 등지에 동학이 떨친 것은 역시 1892년 이후라고 여겨진다.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장흥, 강진 지역에 동학 세력이 늘어나기 시작한 시기는 교조신원운동과 척왜양창의운동이 일어났던 1892년부터 1893년 사이였다. 이 시기에 입도하여 대접주(大接主)와 접주(接主)가 된 분이 많았다. 장흥 지역에는 대덕 대접주 이인환, 남면 대접주 이방언, 부산(夫山) 대접주 이사경(李士京), 웅치 대접주 구교철(具敎徹), 유치(有治) 대접주 문남택, 관산(冠山) 접주 김학삼(金學三), 남외(南外) 접주 박채현(朴采鉉), 관산 농안(農安) 접주 손자삼(孫子三), 부산 용반(龍盤) 접주 백인명(白仁明), 안량(安良) 접주 고채화(高采化), 대덕 접주 홍순(洪淳)·강봉수(姜琫秀)·오동호(吳東昊)를 꼽을 수 있다. 그리고 강진 지역에는 대접주 김병태(金炳泰), 접주 남도균(南道均), 안병수(安炳洙), 윤세환(尹世煥), 윤시환(尹時煥), 장의운(張儀運), 조병길(曺秉吉), 강운백(姜雲伯), 김옥일(金玉一), 신오삼(申五三), 이세화(李世和), 김종태(金鍾泰), 김관태(金寬泰) 등을 곱을 수 있다. 대접주와 접주의 수로 보아 1894년 6월경에 장흥·강진 동학세력은 약 1만여 명은 넘었다고 추산된다. 대흥 접주 휘하에 천여 명이 있었으므로 고읍·남면·회천·웅치·유치·부산 지역을 합하면 7천명은 넘었을 것이다. 강진도 칠량(七良), 대구(大口), 도암(道岩), 군동(郡東), 작천(鵲川), 병영(兵營)을 합하면 3천명은 넘었을 것이다. 당시 1만 명은 엄청난 수라고 할 수 있다. 장흥·강진 동학군들은 1892년 11월에 열린 삼례 교조신원운동과 1893년 1월의 광화문전복소 교조신원운동, 3∼4월에 열린 보은 장내리와 금구 원평에서 열린 척왜양창운동(斥倭洋倡義運動)에 모두 참가하면서 연대의식을 돈독히 하여 왔다. 정부는 무능하게도 동학군의 생존권을 정치적으로 수용하지 못하고 탄압으로 해결하려 하였다. 문제는 더욱 확대되어 결국 1894년 3월 21일에 혁명의 깃발을 올리게 하였다. 장흥·강진 동학군들도 이방언, 이인환, 구교철, 이사경을 비롯하여 많은 접주들을 따라 전봉준 동학군과 같이 합류하였다. 정확히 참전시기는 알 길이 없으나 4월 22일의 황용촌 전투에는 많은 인원이 참전한 것으로 보인다.『동학사』에 "청죽(靑竹)으로써 얽어 닭의 장태와 같이 만든 것으로 밑에 차바쿠를 붙인 것이며 그 속에는 군사가 앉아 총질을 하게 된 것이니 이 장태를 만든 사람이 장흥 접주 이방언이므로 그의 별호를 이장태라고 불렀었다"고 하였다. 이웃 완도에서도 6명의 젊은이가 참가하였다 하므로 큰 접에서는 20명, 작은 접에서는 10명 정도가 동원된 것으로 추측된다. 일단 전주성을 점령하고 나서 5월 초에 동학군과 정부군이 화약을 이루자 중순경에는 각기 자기 고을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리하여 대접주가 있는 곳에 도소를 설치하고 동학 활동에 들어갔다. 장흥·강진에서도 대접주가 있는 여러 곳에 도소를 설치하고 활발하게 동학 활동을 하였다. 동학 활동은 포덕(布德)이었으며 밀려들어오는 민중들을 동학도인으로 교육시키는 것이 주가 되었다. 그리고 귀천타파를 실천하여 신분제를 무너뜨리는 일에 앞장섰었다. 『장흥부사순절기』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즉 "갑오 7월 그믐에 성주 박후(朴侯, 府使)는 단기로 도임하였다. 이에 앞서 동학배들은 점성(漸盛)하여 열읍에서 작패를 부렸다. 전주성 함락 후에는 더욱 강해졌다. 본읍에는 이방언이란 적괴가 있었으며 성품이 흉악하여 비류에 물들어 경내에 수천의 무뢰배를 모아 침탈 행위를 하여 시끄럽게 했다"고 하였다. 당시 동학군은 보수세력의 공격을 막기 위해 최소한의 병력을 유지하게 되었다. 그래서 부유층과 악질 구실아치들로부터 양곡과 돈을 거두게 되어 그들은 "무뢰배를 모아 침탈행위를 한다"고 비난했던 것이다. 이방언 대접주는 6월 중순 이후에 읍내에다 도소를 만들고 때때로 수 천명의 동학도를 모아 위세를 과시하기도 하였다.『박기현일사(朴冀鉉日史)』에는 "장흥군 부산면(夫山面) 자라번지(鱉番地)에서 장흥 동학도들이 대회를 열었다" 하였고, "병영(兵營)에도 도소가 설치되어 있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대흥, 유치(有治), 웅치(熊峙)에도 도소를 설치하고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초기에는 강진읍에도 도소가 설치되었으나 보수세력이 강하여 그들에 밀려 9월 초에 한때 해체 당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9월 하순경에 인근 동학도들의 위세로써 다시 설치하게 되었다.『일성록』갑오 9월 조에 "군기현실(軍器見失)한 강진 전 현감 민창호(閔昌鎬)를 파원압상(派員押上)"하기를 청하는 기록이 있다. 6월 초경에 강진성이 동학군에 점령당했던 것을 문책한 것이다. 이 때 동학도소가 설치되었던 것이다. 그리고『박기현일사』에 "부친께서 수사당(守思堂)으로 피서 갔다 들으니 동학이라는 도인이 오늘 장흥 자라번지에서 모임을 갖고 각처 죄인을 잡아다 다스린다 하며 어제 저녁에는 산성 별장도 잡아갔다"고 하였다. 전라감사와 동학군 사이에 집강소를 설치키로 결정한 것은 6월 초순이며 군·현에 집강을 임명한 것은 6월 중순이다. 관의 기능이 공백상태였으므로 민원 처리와 죄인을 다스리고 관원의 잘못도 징치(懲治)한 것은 도소가 설치되면서 자연스럽게 그 임무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부산 대접주 이사경도 용반(龍盤)에 도소를 설치하고 수인산성(修仁山城) 별장을 잡아다 그가 저지른 비리를 다스린 것 같다. 읍에 설치된 집강소와는 별도로 대접주 산하에 설치된 도소에서도 집강소와 같은 업무를 집행한 것 같다. 장흥부사로 임명된 박헌양이 7월 그믐에 도임하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그는 하루 밤을 자고 8월 1일에 곧 유림들을 초청하여 향교로 가서 8월 초하루의 제례(朔香之禮)를 올렸다. 이 자리에서 동학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척사위정(斥邪衛正)을 강조하고 동학당을 제압할 방도를 논의하였다. 민심을 돌려놓는 것을 우선해야 한다며 각 면에서 학문이 깊고 덕망이 높은 사람(碩德之人)을 뽑아 훈장으로 삼아 강의할 수 있도록 뒷받침 해 주도록(捐 資給)하기로 하였다. 또한 무기를 수선하고 병사를 훈련시켜(修煉武備) 적을 감당할 수 있는 계책을 마련하자고 하였다. 장흥 부사가 부임한 후 동학당을 초멸하려는 움직임이 여러 면에서 눈에 띄게 나타났다. 박헌양 부사의 이러한 움직임은 독자적인 발상이라고 볼 수는 없다. 당시 김홍집 내각은 일본군을 앞세워 동학당을 초멸시키려는 계획이 있었다. 즉 일본군에게 군대를 출동시켜 동학당을 초멸하여 달라고 요청하였던 것이다. 한편 9월초에는 대원군으로 하여금 동학당을 효유하는 글(曉諭文)을 반포하게 하였고 때맞추어 박헌양은 장흥군내 대접주들을 불러다 귀화(歸化)하도록 권하기도 하였다. 이방언은 장흥군의 집강소 집강으로 입장이 곤란하여 동학지도부와 협의하여 겉으로 따르는 척 하였다. 그러나 웅치(熊峙)의 구교철(具敎徹)과 부산의 이사경(李仕敬, 仕京)과 대흥의 이인환은 단호히 거절하였다. 『장흥부사순절기』에는 "이방언을 불러 귀화하기를 바랬더니 방언은 이에 귀순하기로 아뢰었고 고을에 머물러 있던 나머지 도당들도 사라졌다. 적괴 구교철과 이사경은 끝내 듣지 않고 혹은 이웃 군 경내로 도망치거나 혹은 날뛰어 기포(起包)하기에 이르렀다"고 하였다. 당시 전봉준과 김개남 등 동학 지도부는 일본군을 몰아내기 위한 항일 전쟁 준비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특히 9월 18일(양 10월 17일)에는 충청도 청산(靑山)에서 신사(神師 海月 崔時亨)가 전국 동학군에게 항일전에 나서라는 기포령을 내렸다.『백범일지(白凡逸志)』에 의하면 "호랑이가 물러 들어오면 앉아서 죽을까. 참나무 몽둥이라도 들고 나서서 싸우자"며 기포령을 내렸다 한다. 이에 따라 10월 12일부터 15일 사이에 전봉준, 김개남, 북접 손병희는 수 천명의 동학군을 이끌고 공주와 청주를 향해 북상하기 시작하였다. 장흥·강진·영암 동학군들도 신사의 기포령에 따라 10월 10일부터 기포하기 시작하였다.『박기현일사(朴冀鉉日史)』10월 16일조에는 이 때 "동학도들은 장흥 사창장터(社倉市)에 천여 명이 모였으며, 영암 덕교(德橋)와 강진 석전장(石廛市)에도 계속 모여들었다"고 하였다.『장흥부사순절기』에는 "교철(敎徹)의 무리가 지금 웅치에서 재산을 약탈하고 인명을 살해하고 있다" 했으며,『유륙재유고(有六齋遺稿)』에는 "웅치면에 적도들이 상주하며 약탈과 살상을 일삼는다" 하였다. 아마도 장흥 부사의 귀화 권유를 물리친 유치·부산·웅치 동학군들은 전주의 대도소의 명령에 따라 기포하였던 것 같다. 박헌양은 동학군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자 공격을 결심하고 우선 병영으로 직접 찾아가 병마절도사 서병무(徐丙懋)에게 힘을 합쳐 나서자고 요청하였다. 그러나 병사는 확답을 피하였으며 병력 지원도 불응하였다. 10월 15일이 되자 웅치에 모인 동학군은 1천명이 넘었다. 나주목사 민종렬(閔種烈)을 모방하려던 박헌양(朴憲陽)은 수성장 임창남(任昶南)에게 수 백 명의 병졸을 이끌고 가서 초멸하라고 명령하였다.『장흥부사순절기』와『유륙재유고』에는 "구교철이 웅치면에서 백성들의 재물을 약탈하고 인명을 살해한다는 말을 듣고 수성별장 임창남(任昶南)으로 하여금 관군을 끌고 가서 토벌케 하니 이겼다(得捷)"고 하였다. 사살자 수와 피해를 준 사항이 기록에 없는 것으로 보아 싸우지도 못하고 돌아왔던 것 같다. 10월 19일부터 벽사역 찰방·장흥부사·강진현감·전라병사들은 일제히 동학군을 잡아들이기 시작하였다. 물론 동학세력 때문에 많은 인원을 잡아들이지는 못했으나 읍 소재지나 병영에 거주하던 적지 않은 동학군이 집을 헐리거나 곤욕을 당하는 일이 있었다. 한편 장흥과 강진 수성군은 총기를 수선하고 병정을 훈련시키는 데 여념이 없었으며 특히 병영에서는 병력을 보강하고 병기를 수선하고 조련을 서둘렀다.『박기현일사』10월 18일조에는 "수성소로부터 여러 곳에서 민군(民軍) 수천을 징발하여 왔으며, 이들을 병영 장대에서 조련하는 광경을 보았다"고 하였다. 한편 병사는 순무영에 병력 지원을 요청하기도 하였다. 동학군 측에서도 무기를 확보하고 군량미를 조달하며 대군을 출동시킬 준비에 나섰다. 그런데 웅치, 장동(長東), 부산, 유치 동학군들이 모였으나 천여 명에 지나지 않았으며 총기 또한 태부족이어서 관군과 대적이 안되었다.『박기현일사』는 "10월 16일 … 저녁에 집에 내려와 들으니 동학군들이 장흥 사창 장에 모인 자가 천여 명이라 하며 그리고, 영암 덕다리(德橋)와 강진 석전장(石廛市)에도 각기 모여들고 있다"고 하였다. 장흥 수성군과 벽사역의 역졸, 전라병사 휘하의 병영군까지 동원하면 무장 관군은 3천명이나 되었다. 보다 많은 병력과 무기가 필요한 장흥, 강진 동학지도부는 생각 끝에 멀리 금구(金溝) 지역 동학군에게 지원을 요청하게 되었다. 11월 초순경으로 여겨지는데 익산군 함열(咸悅)에서 기포한 김방서(金邦瑞)에게 사람을 보냈다.『동학사』에는 "강진, 병영과 장흥부에서는 관리배들이 다시 발호하여 동학당을 침벌(侵伐)한다는 급보가 대본영에 들어왔었다. …좌우로 더불어 의논할 즈음에 금구 대접주 김방서가 그것을 정복시키겠다고 일어섰다. 그래서 김방서는 3천 군을 거느리고 바로 남방으로 향하여 내려가니라"고 하였다. 전봉준 동학군은 공주전투에 사활을 걸고 있는 상황이었으므로 대본영 운운한 이 기록은 사실과 다르다. 장흥에서 보낸 특사는 11월 초순경에 직접 김방서 대접주를 찾아가 원병을 요청한 것이 틀림이 없다. 동학군이 바삐 움직이자 강진 현감은 이를 감지하고 불안하여 순무영에 병력을 요청하였다.『순무선봉진등록』11월 13일조에 "강진현감이 지난 달(10월) 29일에 올린 보고가 11월 9일에 당도하였다. 문서의 요지는 본읍 비류(동학군)에 대해 읍의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우니 병력을 파견(分兵) 토벌하여 달라"는 것이었다. 장흥에는 벽사 역졸이 수 백 명이나 되었고 병영에는 천여 명의 영병이 있었다. 그러나 강진현에는 수성군이 기백 명 정도에 지나지 않아 불안했던 것이다. 별다른 충돌 없이 1개월이 지나자 동학군은 장흥 관아를 공격하기 위해 11월 하순부터 보성과 웅치로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그 중 대흥 대접주 이인환(李仁煥)은 천여 명을 이끌고 진격하였다. 고읍을 거쳐 남면으로 진격하여 위세를 떨치고 다시 회령(會寧)으로 진격하였다. 이인환 대흥 대접주가 강력한 동학군을 편성한 것은 스스로 무기를 제조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박헌양 부사는 이 소식을 듣고 수성장을 급히 출동시켰다. 동학군을 대하고 보니 수적으로 월등할 뿐만 아니라 무기도 제대로 갖추고 있어 병졸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다. 싸움이 시작됐으나 얼마 가지 못하여 수성군은 후퇴하여 돌아 왔다.『천도교회월보』에는 이인환 대접주의 기포 광경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내가 일곱 살 먹던 그 해(갑오)다. 봄부터 우리 마을에는 동학 열이 심하여 집집마다 청수단(淸水壇)을 만들고 낮이나 밤이나 주문 소리가 흡사 글방에서 글 읽는 소리 같았다. … 하루는 접주 이인환 씨가 거정리(巨井里) 들판에서 동학군 대모임을 한다고 한다. 어른은 물론이요 부인 아동까지도 구경을 간다고 한다. 아버지도 가시고 삼촌도 가시고 할머니도 가신다고 한다. 나도 가겠다고 선두에 나섰다.
… 얼마 후에 접주 이인환 씨가 기포령을 내렸다. 이 기포령이 한번 발하자 어쩐 일인지 사람들이 물끓듯하였다.… 대장기(大將旗) 아래 청수를 모시고 주문을 세 번 고성 대독(大讀)하니 그 웅장한 소리는 저절로 강산초목이 동하는 것 같았다. 식이 끝나자 나팔소리에 따라 대군은 동한다. 저 건너편 이인환씨 본진에서 행군 나팔을 불고 서로 응성(應聲)하여 나간다."
수성장으로부터 적의 세력이 너무 커서 실패했다는 보고를 받은 박헌양은 분노를 금할 수 없어하다가 다시 수성군을 출동시켰다. 때 마침 병영으로부터 수 백 명 원병이 도착하여 이들과 같이 웅치로 갔다. 동학군은 웅치가 협착하여 잠시 보성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수성군과 병영병은 웅치에 이르자 동학군이 보성으로 이동한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돌아 왔다. 당시 보성군수 유원규(柳遠奎)는 동학 접주 박태로(朴泰潞)와 친밀한 사이로 서로 돕는 사이었다. 동학군은 안심하고 이 곳에 머물면서 장흥부성을 공격할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이에 앞서 장흥부사 박헌양과 병영의 서병무(徐丙懋) 병사, 그리고 벽사 찰방 김일원(金日遠)과 강진현감 민창호(閔昌鎬)도 동학군의 위세를 듣고 서둘러 대비책을 마련하였다. 『박기현일사』에는 "장흥부사가 동학도 수 천명이 웅치에 집결, 장흥을 치려한다며 별포 5백 명과 조총 2백 자루를 청해왔다. 병사는 이를 모두 불허했다" 한다. 그 뒤에 "장흥으로부터 급보가 있어 도통장 윤권중(尹權中)과 수성별장 방관숙(房管叔)으로 하여금 2백의 군졸을 이끌고 가서 구하라 했으며 본읍군 2백도 같이 갔다"고 하였다. 그런데 23일조에 "도통장이 장흥으로부터 환군(還軍)했다"고 하였다. 한편 동학군 측은 모든 일이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었다. 금구와 화순, 능주 등지에서 11월 말경에 5천여 명이 도착하였고 장흥 동학군들도 5천여 명이나 모였다. 동학군은 드디어 관군을 무찌르기 위해 출동하니 12월 1일에는 북면 사창(社倉, 장평면 용강리 2구)으로 진출하였다.『유륙재유고』에는 "12월 1일 적들은 보성 등지에 다시 모였다가 북면 사창으로 나왔다. 대접은 만 여이고 소접은 6∼7천이다. 모인 적도는 금구, 화순, 능주의 여러 적도들이다"고 하였다. 동학군의 수가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으나 실지 병력 수는 1만 명 정도였다고 본다. 『장흥부사순절기』에는 좀더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인근에서 널리 불러들인 여러 적들은 12월 1일에 보성에서 사창 땅으로 나와 주둔하였다. 대접은 만 여이고, 소접은 2∼3천이었고 금구 거괴 김방서, 화순 괴수 김수근(金秀根), 능주 거괴 조종순(趙鍾純)이 병력을 이끌고 왔다. 이 때 이방언도 급히 병력을 일으켰다"고 하였다. 황현(黃玹)은 "이방언, 이사경, 이인환, 백인명(白寅明), 구교철 등이 회령진에 모이니 그 무리는 수만이었다"고 하여 역시 표현을 과장하였다. 금구에서 수 천명이 보성까지 오자면 6일간은 걸렸을 것이므로 금구에서 출발한 날짜는 11월 23일경이라고 여겨진다. 일단 화순에 와서 김수근(金秀根) 접주와 합류하였고 능주에서는 조종순(趙鍾純) 접주와 합류하였다. 1만 명이란 엄청난 병력을 확보한 동학군은 12월 1일부터 드디어 벽사역을 비롯하여 장흥관아, 강진관아, 병영을 공격할 계책을 세우고 일단 사창으로 진출하였다.
2. 벽사, 장흥, 강진, 병영 점령
12월 3일 아침 사창으로부터 벽사역 인근으로 진출한 동학군 1만여 명은 초막을 치고 야영에 들어갔다.『장흥부사순절기』에는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이방언은 송정등(松亭嶝, 장흥 남쪽)에, 이인환(李仁煥)과 구교철(具敎徹)은 건산리(巾山里) 뒤 등성이에, 김방서는 벽사 뒷뜰에, 이사경(李士京)은 행원리(杏園里) 앞벌에 진을 쳤다. 이 광경을 본 관군과 관리들은 마치 천둥 바람과 같은 세력에 밀려 무너져 달아날 바를 몰랐다"고 하였다. 놀란 벽사역 찰방 김일원(金日遠)도 저항해 볼 생각은 접어두고 12월 3일 저녁에 가족들을 이끌고 장흥 부중으로 피신하였다. 이 곳도 불안하자 청병을 빙자하여 병영으로 갔다가 다시 나주로 도망갔다. 12월 4일 새벽(8시경), 드디어 공격명령이 떨어지자 동학군은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벽사역관에 포격을 가했다. 이미 역졸들은 도망가 버려 저항하는 세력이 없어 단숨에 점령하고 말았다.『장흥부사순절기』에는 "4일에 벽사역 공해와 민가는 적들의 화포로 모두 불에 타 재가 되었고, 불길과 연기는 하늘을 덮고 들을 메우니 사람들은 넋을 잃었다"고 하였다. 벽사도(碧沙道) 찰방역참(察訪驛站)은 성채가 아닌 평지에 있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점령할 수 있었다. 이 날 저녁 장녕성(長寧城) 동문 문루에 올라가 벽사역이 불타는 광경을 바라보던 박헌양 부사와 관리들은 뜬눈으로 밤을 새우며 방어책을 강구하였다. 장녕성은 서남쪽과 북쪽은 가파른 산으로 둘러 있고 동쪽이 터져 있지만 높은 목책을 쌓아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당시 장녕성을 지키던 수성군의 수는 1천여 명으로 추산된다. 박헌양은 성채가 견고하여 수성군이 분전하면 방어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성안 백성들은 넋을 잃지 않은 이가 없었다"고 했듯이 관민이 모두 사기가 떨어져 있었다. 박헌양은 동문루에 올라 장병들을 격려하며 방어에 임하였다. 12월 5일 새벽 동학군은 어둠 속을 헤치고 장녕성(長寧城)을 동서남북으로 에워쌌다. 동이 트자 한 방의 포성을 신호로 함성을 지르며 성벽에 달라붙었다. 제일 먼저 북문(連山里 소재)이 무너지자 사방에서 성을 타고 넘어갔다. 당황한 수성군은 달아나기에 바빴고 이 광경을 본 박헌양은 문루에서 내려와 동헌으로 들어갔다. 1시간만에 장녕성은 동학군의 수중에 들어갔다.
이튿날 새벽 박헌양은 다시 문루에 올라 적진을 살펴보았다. 방포하는 소리가 난 후 (일부 동학군이) 곧바로 북문을 넘어오자 나머지 적들도 사면에서 난입하여 온 성안이 불길에 휩싸였다. … 부사는 관군의 도움을 받아 곧바로 동헌으로 내려갔다. 적들이 쫓아와 난동을 부리다가 소매 자락을 잡아당기며 인부(印符)를 찾았다. 부사는 흔들림 없이 버티고 서서 성을 내며 꾸짖기를 나는 왕명을 받은 (장관으로) 인부는 내가 간직하고 있다. 너희들이 어찌 탈취하려 하는가 하며 꾸짖기를 그치지 않았다. 적은 (부사를) 억눌러서 동문 밖 장터로 끌고 가 무엄하게 창을 휘두르고 총포를 쏘며 위협하였다. 부사는 정색하고 바르게 앉아 조용히 최후를 마치니 12월 5일이었다. 동학군의 공격을 막다가 희생된 수성군 장졸의 수는 96명이다. 전사자가 대부분이고 붙잡혀 항거하다 살해당한 이도 있었다. 특히 기실(記室, 부사 측근에서 기록을 맡았던 벼슬) 박영수(朴永壽)와 수성별장 임기남(任璂南, 昶南), 통장(統將) 주두옥(周斗玉), 호위장(護衛將) 주열우(周烈佑)도 같이 희생되었다. 부사의 시체는 동문 밖에 버려져 있다가 동촌(東村)의 어떤 청상과부가 거두어서 보이지 않는 곳에 묻어 주었다 한다. 전사자 96명은 다음과 같다. 朴憲陽 朴永壽 任璂南 周斗玉 周烈佑 金昌祚 (이하 가나다 순) 金甲錄 金奎華 金基三 金德敏 金德孫 金明叔 金文祚 金民祚 金秉燁 金分實 金錫賢 金陽均 金連祚 金英萬 金有信 金益斗 金柱立 金柱五 金俊三 金天祺 金靑吉 金靑山 金七斗 金泰佑 金興斗 金喜鎭 朴在奎 朴八洪 徐官宗 徐允叔 孫玟敦 孫奉圭 孫奉植 孫誠模 孫汝根 孫昌國 宋洛鎭 宋承默 宋在燮 宋在永 宋在完 申東信 申東采 申應淵 申應兌 申千同 申鉉立 申鉉燮 梁圭化 嚴喜敎 呂甲燮 呂東根 呂東允 呂武燮 呂亨鐸 吳萬吉 吳夫祚 吳春伴 吳必根 吳學仁 李俸柱 李成民 李永斤 李太文 李洪瑞 李化珉 任炳琡 任炳元 任益先 任正華 任泰玉 張洛道 張同石 張順三 鄭升文 趙金巖 趙福巖 趙奉國 趙漢吉 周夢吉 周福鉉 周奉默 周伊勳 周点順 周昌英 周采坤 崔誠斗 崔應倫 崔定斗 河永巖. 12월 6일 10시경에 동학군은 일단 벽사역 일대로 돌아와 점심을 마치고 하오 2시경에 강진으로 출발하였다. 선발대는 15리 지점인 군동면(郡東面) 금천(錦川)에 유숙하였고 후발대는 10리 지점인 사인점(舍人店) 앞뜰에 초막을 치고 유숙하였다. 새로 부임한 강진 현감 이규하(李奎夏)는 장흥이 함락되었다는 보고를 받자 급한 나머지 6일 새벽에 병영으로 달려가 원병을 요청하였다. 서병무 병사가 난색을 표하자 나주(羅州) 순무영(巡撫營)으로 달려가 청병하였다. 역시 상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며 어렵다고 하였다. 강진현 관민들은 동학군이 밀려오자 우왕좌왕하며 혼란에 빠졌다. 이 때 도통장(都摠長) 김순채(金順采)와 김용현(金龍鉉) 그리고 보암(寶菴) 도통장(都摠長) 김한섭(金漢燮)이 장졸들을 격려하며 방어에 나섰다. 이날 아침 안개가 자욱하여 지척을 분간 할 수 없었다. 수적으로 우세한 동학군은 8시경에 안개를 이용하여 성밑까지 다가갔다. 얼마간 ㅇ9 측은 고함을 질렀으나 포성이 요란해지자 백성과 병졸들은 도망치기 시작하였다. 결국 동문과 남문이 무너지면서 읍성(邑城)은 손쉽게 동학군의 수중에 들어갔다. 7일 진시(8시경)에 적도들이 … 성밖 5리쯤 사면에 진을 쳤다. 장리(將吏)와 별포(別砲)들은 군민을 단속하여 성을 등에 지고 싸우려 하였다. 어찌 읍운(邑運)이 불행함인가. 안개가 짙게 깔려 … 사방이 가리어 지척을 분간할 수 없게 되었다. 적진에서 포성이 울리자 순식간에 성은 포위되었고 그들은 "죄 없는 백성과 병졸들은 모두 성밖으로 나오라. 만일 이속과 별포와 뒤섞여 죽을지 모른다"고 외쳤다. 군중들이 흩어지기 시작하자 이 때에 적도들은 달려들어 성을 함락해 버렸다. 전투는 1시간만에 끝났고 별포 그리고 의병들이 전사했으며 도총장 김한섭도 총탄에 맞아 전사하였다.『선봉진일기』에는 "7일 진시(辰時)경에 동도 만여 명이 장흥에서 내려와 사면에서 돌입하여 성이 함락되자 민가는 불 타버려 남은 것이 없었다. 장리·별포·수성군과 성중 인민들은 포살 도륙 당하여 살아 남은 사람이 없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앞서『선봉진정보첩』에서 본 바와 같이 동학군은 공격에 앞서 무고한 백성들이 피해를 입지 않게 하기 위하여 빠져 나오도록 조치하였다. 『오하기문』에는 "의병장 김한섭(金漢燮)이 전사했으며 그 제자인 김형선(金亨善)을 비롯하여 사인(士人) 김용현(金龍鉉), 좌수 윤종남(尹鍾南), 현리 김봉헌(金鳳憲), 황종헌(黃鍾憲)도 같이 전사하였다"고 하였다. "김한섭은 고산(鼓山) 임헌매(任憲梅)의 문하로 호를 오남(吾南)이라 하였으며 헌매가 지어주었다 한다. 그는 본디 이방언과 동문수학한 사이로 방언이 적에 물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타이르는 글을 보냈으나 끝내 듣지 아니하자 절교한다는 글을 다시 보냈다 한다. 또한 동학을 경계하는 글을 지어 사람들을 효유하기도 하였다 한다. 동학군의 다음 목표는 병마절도사가 있는 병영(兵營)이었다. 12월 10일로 정하고 9일부터 강진에서 병영 인근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오하기문』에는 "9일에 적은 장흥, 강진, 보성 경계 지점에 나누어 주둔하고, 서로의 거리는 10리, 20리 정도였으며 각기 수 천명씩 거느렸고 포성을 서로 들을 수 있었다. 병영군은 감히 출전하지 못하고 성안에서 지키려 하였다. 성 둘레에는 목책을 단단히 설치하고 방비하였다. 이날 밤에 적인 이인환이 서쪽 10리에 있는 군자리에 진을 쳤다. 장흥 부리(府吏)인 박창현(朴昌鉉)이 수성도총(守城都摠)으로 차임(差任)된 윤형은(尹衡殷)에게 포군 3백 명을 얻어 역습하려 했으나 들어주지 않았다"고 한다. 병영 공격은 장흥과 강진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적어도 전라 병마절도사가 있는 곳이며 병력의 수로 보나 질로 보나 장흥·강진 수성군과는 달랐다. 다만 동학군에 유리했던 것은 영병들의 사기가 땅에 떨어져 싸울 의욕이 없었다는 점이다.『박기현일사』12월 9일조에 "조반을 먹고 잠시 수성 상태를 돌아보니 수성군 거의가 겁에 질려 어찌할 줄을 모르고 있었다. 수성장 방관숙(房管叔)과 도통장 윤권중(尹權仲)은 교사하고 무능하여 제 살 길만 찾는 자들이었다. 군무에 무지 무능한 병사(兵使)도 이들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뒷전에 물러나 있으니 수성할 대책이 없었다. … 지금 적도들은 군자리(君子里)에 결진(結陣)해 있으며 내일 병영에 쳐들어갈 것이다"고 하였다. 또한『오하기문』12월 10일조에는 우후 정규찬이 남관(南關·강진, 병영 사이에 있는 요지)이 지세가 험한 요충이니 그 곳을 먼저 차지하면 수만의 적이라도 막을 수 있으니 정예 포병 3백 명을 차병(借兵)하여 달라고 하였다. 그러나 병무는 "병영도 방어하기 어려운데 남관을 어찌 알겠는가"며 역정을 내었다 한다. 또한 부리(府吏)인 박창현(朴昌鉉)이 도총 윤형은(尹衡殷)에게 이인환(李仁煥)이 군자리에 유진하고 있으니 포군 3백을 차출, 기습하자고 하였으나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다. 결국 12월 10일 새벽에 수 천명 동학군은 사방에서 진격하여 병영성(兵營城) 동쪽의 세 봉우리를 점령하였다. 그리고 포격을 하니 화약 냄새와 화염이 하늘을 덮었다. 이 때 피난민은 일제히 밀려나왔으며 이 틈에 서병무 병사는 수성을 포기하고 피난민 속에 섞여 영암으로 빠져나가 원병을 요청하였다 한다. 『오하기문』은 "서병무가 크게 놀라 소매 좁은 두루마기 차림으로 해 가리개를 쓰고 옥로(玉鷺, 갓 머리의 옥장식)는 떼어 감추었으며 인부(印符)를 가슴에 품고 짚신 신발로 피난민과 섞여 성을 빠져나가 영암으로 달아났다"고 하였다. 남은 장졸들은 사기가 떨어져 싸울 생각을 못하였다. 우후 정규찬·감관(監官) 김두흡(金斗洽)·전 도정 박창현·군교 백종진·수성도감 부리 윤형은 장병들을 격려하며 앞장섰다. 동학군은 10시경에 먼저 목책에 불을 질러 온통 불바다를 만들고 삼면에서 함성을 지르며 물밀 듯이 공격해 들어갔다. 병사가 도망친 것을 알고 있는 영병들은 앞다투어 도망쳐 버렸다. 우후 정규찬을 비롯하여 감관 김두흡, 군교 백종진, 전 도정 박창현 등이 분전하였으나 처절하게 전사하였다. 『오하기문』에는 "사태를 수습할 길이 없자 규찬은 적진에 들어가 전사하였고, 창현은 검으로 수 십 인을 참하고 나서 적탄에 맞아 쓰러졌다. 두흡은 군기고를 지키다 적이 화약을 탈취하러 오자 화로를 안고 화약더미로 들어가 폭사하니 적 9명도 같이 죽었다"고 하였다. 『오하기문』에는 "사태를 수습할 길이 없자 규찬은 적진에 들어가 전사하였고, 창현은 검으로 수 십 인을 참하다 적탄에 맞아 쓰러졌다 다시 일어나 발포자를 죽이고 절명하였다. 두흡은 군기고를 지키다 적이 화약을 탈취하러 오자 '화약이 없으면 적도 죽으리니 내가 죽는 것은 적을 죽이는 일이다'며 화로를 안고 화약더미로 들어가 폭사하니 적 9명도 같이 죽었다"고 하였다. 병영 전투는 정오에 동학군이 완전히 장악하자 막을 내렸다.
3. 석대벌의 최후 결전
병영을 점령한 동학군은 그 여세를 몰아 영암까지 진출하려 하였다. 그러나 일본군과 관군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장흥으로 철수하였다. 벽사·장흥·강진·병영이 동학군 수중에 들어갔다는 급보로 후비보병독립제19연대(後備步兵獨立第19聯隊) 대대장인 남소사랑(南小四郞)은 즉각 병력을 파견하였다. 나주에 있는 대대본부에서 내린 명령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① 적은 지금 영암(靈巖)·강진(康津) 등지에 있다. 내일 석흑광정(石黑光正) 대위는 1개 소대와 2개 분대를 영솔하고 교도중대(敎導中隊) 2개 분대와 같이 오전 8시에 출발, 영암을 거쳐 강진의 적을 토벌하라.
② 제1중대에서 1개 소대를 차출하여 능주(綾州), 보성(寶城)에 먼저 갔다가 장흥 부근을 거쳐 강진의 적을 공격하라.
③ 백목(白木) 중위는 부하 병력과 교도대의 나머지 병력을 인솔, 오전 8시에 출발하여 원정(元亭)을 거쳐 장흥부근을 지나 강진의 적을 공격하라. 단 제2중대 및 제3중대와 맞추어 포위 공격하라.
④ 통위 대대장 선봉장은 부하 2백 명을 영솔하고 내일 아침 8시에 출발, 무안→목포→주룡포→남리→해남에 이르는 연로를 수색하여 적도들을 체포하라. 만일 거괴(巨魁)를 체포하거든 정토군 본부(나주)로 보내라. 엄히 당부할 일은 민재를 약탈하거나 보교를 타고 가는 두 가지 일은 절대 금해야 한다.
⑤ 통위영 30명과 사관 2명을 능주에 있는 제1중대에 증원토록 하라.
나주에서 일본군과 경군은 세 갈래길(三路)로 강진을 향해 내려오고 있었다. 영암을 거쳐 온 석흑광정 대위와 교도대는 12월 12일에는 병영에 나타났다.『박기현일사』12월 12일조에 "경군과 일본군 170∼180명이 내려왔으며 동학군은 이미 도주하여 병영에는 없었다"고 하였다. 경군은 교도중대로 2개 분대인 약 30여 명 정도였고 나머지 150∼160명은 석흑(石黑光正) 대위가 이끈 일본군이었다. 석흑 대위는 1개 소대와 2개 분대를 이끌고 왔다면 80명 정도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150∼160명을 이끌고 왔으므로 병력 수가 맞지 않는다. 그는 제19대대 제3중대장이었으므로 1개 소대와 2개 분대만 이끌고 오지 않았을 것이다. 한편 12월 11일에 나주를 출발한 일본군 제1소대 50명과 통위영 교장 황수옥(黃水玉)이 이끄는 30명의 경군은 능주에서 일박하고 12일 새벽에 장흥 땅을 밟았다. 황수옥은 "11월에 나주를 떠나 30명의 병사를 이끌고 능주에서 일박하고 12일 오경(五更, 새벽 5시경) 때 장흥에 도착 일박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능주에서 통위영 병사 30명과 사관 2명을 증원 받은 것 같다. 그리고 백목(白木誠太郞) 중위가 이끄는 일본군 50명과 교도중대 30명은 원정(元亭)을 거쳐 15일에 장흥으로 들어왔다.『동학당정토약기』에 "3개 지대 중 우측 지대는 강진에서 비도와 싸우느라 약간 늦어졌으며, … 강진에서의 격전은 결국 장흥의 적 격퇴에 크게 이바지하였다"고 하였다. 강진 어디서 전투를 하였는지 기록이 없다. 장흥에 집결한 경군과 일본군은 경병이 약 120명, 일본군이 약 250명으로 모두 370명 정도였다. 여기서 한가지 언급할 것은 영암과 해남 동학군의 동태이다. 벽사와 장흥·강진이 함락되자 영암·해남 동학군들도 천여 명이 기포하여 관아를 공격하려 하였다.『순무선봉진등록』에는 "7일에 강진을 연달아 함락하자 그 여세가 더욱 창궐, 본읍(영암)도 침범하리라 하니 성중 이민(吏民)이 힘을 합쳐 주야로 방비에 힘을 기울이고 있으나 중과(衆寡)의 세가 커서 걱정이 많다"고 하였다. 김재계의『교회사』에는 병영을 공격할 때 이미 영암 동학군들도 참가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천도교회사초고』와『천도교서』에는 "양빈(梁彬)·신란(申欄)·최영기(崔永基)가 기포했다" 했으며,『순무선봉진등록』에는 주성빈(朱成彬)·강군오(姜君五)·김순범(金順凡)·정용달(鄭用達)·김순천(金順天)·김권서(金權西)·박맹룡(朴孟龍) 등이 기포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들은 약 1천여 명을 동원하여 장흥·강진 동학군과 합세하여 영암 군수 남기원(南起元)과 수성장 하태명(河泰命)을 항복시키려 했으나 12일에 일본군이 오게 되어 실패하고 말았다 한다. 앞서 병영이 위태롭게 됐을 때 서병무 병사는 7∼8차례나 영암에 파발을 보내 포군 징발을 명령하였다. 그 때마다 영암 군수는 이에 응할 수가 없었다. 영암 동학도들이 이미 기포하여 쳐들어 올 태세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병력을 다른 곳에 돌릴 여유가 없었다. 일본군이 2일만 늦었어도 영암성은 동학군의 수중에 들어갔을 것이다. 해남 동학군들도 병영이 함락되자 크게 고무되어 12월 18일에 수 천명이 기포하였다. 장흥 전투에서 밀려난 동학군들이 몰려가 지방 동학군들과 같이 기포한 것 같다. 이들은 19일 새벽에 공격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일본군과 통위영병이 밤중에 나타나 공격해 오자 격전이 벌어저 8∼9명의 전사하였다. 해남도 일본군이 하루만 늦게 왔더라면 동학군의 수중에 들어갔을 것이다. 병영에서 철수한 동학군은 두 지역에 나누어 있었다. 주력를 이루는 이인환·이방언 동학군은 남면 어산촌(語山村)에 주둔하였고 나머지 소수 병력은 장흥 남문 밖 건산(巾山) 모정등(茅征嶝)에 주둔하고 있었다.『유륙재유고』와『장흥부사순절기』에는 12일 저녁에 "소모관 백낙중(白樂中)이 이끄는 경병이 보성으로부터 와서 먼저 모정등 동학군을 공격하고 13일 새벽에는 남문 밖 동학군을 격파하였다"고 한다. 운봉 수성에 공로가 있어 호남 소모관으로 임명된 백낙중은 통위영 소속으로 30명의 병력을 이끌고 능주로 가서 일본군 제1중대에 합류하여 이곳으로 온 것이다. 황수옥에 의하면 12일에 장흥으로 와서 하루를 자고 13일 새벽에 일본군과 힘을 합쳐 몇 차례 공격하자 적들은 흩어졌다고 하였다. 그런데 백낙중이 단독으로 "13일 새벽에 남문 밖 동학군을 격파하였다"는 기사는 전후가 맞지 않는다.『오하기문』에는 나주에 있던 이규태가 병영의 급보를 받고 한 지대 병력을 먼저 출발시키고 백낙중과 더불어 병영으로 향하였다고 하였다. 도중에 김일원(金日遠, 벽사 찰방)을 만나 안내를 받아 병영에 갔으나 적은 이미 장흥 모정등(茅亭嶝)으로 퇴각하였다. 13일에 남문 밖 동학군의 기세를 보니 대단했으나 관군이 10여 발의 대포를 쏘자 패주하였다고 하였다. 이 기사도 역시 앞뒤가 맞지 않는다. 『동학당정토약기』에는 "좌측 지대(일본군 제1중대)에 소속되어 순회하던 소모관 백낙중이란 자 … "는 일본군을 따라 온 것으로 되어 있고, "이규태가 남해에 도착했을 때에 장흥·강진 전투는 이미 끝났다"고 하였다. 백낙중은 분명 능주에서 합류하여 황수옥과 같이 12일에 장흥으로 들어 왔으며 13일에 일본군과 함께 동학군과 싸운 것이 틀림이 없다. 동학혁명 중 최후 전투라 할 수 있는 장흥 지역 전투는 13일에 막이 오른 것이다. 뒤이어 15일에는 석대벌 전투, 17일에는 옥산촌(玉山村) 전투로 이어지면서 일본군의 야만적 살인행위가 시작되었다.『순무선봉진등록』에는 "13일 새벽에 적세를 탐지하니 남문 밖에 수 천명이 집결해 있었다. 일본군과 본영 병정 30명이 합세 공격하니 수합(數合)이 못되어 적은 사방으로 달아났다. 세차게 추격하여 20여 명을 포살하니 나머지는 죽을 힘을 다해 달아나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하였다. 화력이 약한 동학군은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남면 어산촌 본진으로 후퇴한 것이다. 어산촌(語山村)에 집결해 있던 이인환·이방언 대접주와 동학지도부는 여러 대책을 검토한 끝에 15일 새벽에 일본군을 공격하기로 하였다.『순무선봉진등록』12월 21일자 이진호(李珍鎬) 교도대장 보고에 의하면 12월 15일에 동학군은 일본군과 관군을 포위하고 맹공을 퍼부었다. 그러나 백목 중위가 일본군 지원부대를 끌고 오자 역습으로 바뀌면서 석대벌과 자울재에서 많은 동학군이 희생되었다고 하였다.
15일 … 장흥에 도착하여 … 부대를 주둔시키고 잠시 휴식하고 있었는데 뜻밖에 비류 3만 명이 봉우리 아래에서부터 북쪽 뒤골짜기 주봉에 이르도록 만산편야(滿山遍野) 수 십리에 걸쳐 봉우리마다 수목 사이에 깃발을 줄줄이 꽂고, 함성을 지르고 포를 쏘며 충살(衝殺)코자 날뛰는 기세가 대단하였다. 그러자 주민들은 허둥대며 어찌할 줄 몰라 분주하였다. 일본군 중위와 상의하여 통위병 30명(백낙중, 필자 주)으로 주봉의 적을 물리치게 하고, 본대 병정은 일본군과 같이 성모퉁에 있는 죽림(竹林)에 잠복하였다. 그리고 먼저 민병 30명을 출동시켜 싸우게 하여 들판으로 유인해 낸 다음 충성을 떨치려는 병졸들을 두 갈래로 나누어 총을 쏘며 공격하자 잇달아 (동학군) 전열이 무너지므로 전진 또 전진하여 공격하니 포살자가 수 백 명에 이르렀다. 노획물은 크고 작은 대포 4문과 회룡창 한 자루, 나머지는 활과 화살, 화약과 총탄 및 잡기들이었으며 모두 태워버렸다. 20리 지점인 자울재까지 추격하자 해는 서산에 걸려 있고 북풍 찬바람이 불어오고 병졸들은 허기진 기색이었다. 또한 남쪽을 바라보니 골짜기가 깊고 비스듬하게 구불구불한데다 대숲이 빽빽하여 잘못될 염려가 있어 곧 본진으로 철수하였다.
남면 어산촌에 집결해 있던 동학군 지도부는 병력 보강하기 위해 보성과 해남, 영암 동학군에게 지원을 요청하였다. 장흥, 강진과 합세하자 며칠 사이에 3만여 명으로 늘어났다. 북쪽에서 패전하여 밀려 내려온 많은 동학군들도 합류하였다고 본다. 15일 아침 선발대는 장녕성 북서쪽 산봉우리 일대를 차지할 수 있어 선제공격에 나섰다. 후속 병력도 계속 줄을 이어 들판을 메웠다. 당시 일본군 2개 지대 약 200명과 경군 60여 명은 장녕성안과 남문 옆 남산 봉명대에 진을 치고 있었다. 전투가 시작되자 강진으로부터 백목 중위가 일본군 60명과 교도대 약 30명을 이끌고 나타났다. 성암(聲菴) 김재계(金在桂)의 증언에 의하면 12월 15일에 어산촌에 본진을 둔 "이인환·이방언은 보성, 장흥, 강진, 해남, 영암 각 군의 포(包)를 합하여 … 북상(나주)을 도모하던 때에 정부군과 일본군이 장흥에 내주(來駐)했다는 소식을 듣고 … 수십만 동학군을 지휘하여 장흥읍으로 직충(直衝)하다가 석대벌(石臺坪)에서 결전을 벌였다"고 하였다. 처음에는 자신만만했으나 일본군의 계략에 빠져 산림지대에서 평지로 나오게 되자 전세는 불리하게 되었다. 월등한 화력을 가진 일본군과 경병은 동학군이 접근할 수 없는 거리에서 사격하니 당해낼 수가 없었다. 화승총과 창칼이 고작인 동학군의 무기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2시간이 지나자 동학군의 전열은 흩어지기 시작하였고 끝내 무너지고 말았다. 싸움터는 석대벌에서 송정리로, 다시 자울재로 옮기면서 약 4시간에 걸쳐 혈전을 벌였지만 수 백 명의 희생자를 낸 동학군은 패배하였다. 일본군과 경군은 날이 어둡자 추격을 포기하고 돌아갔다. 재기 불능에 빠진 이인환·김삼묵·윤세현(尹世顯) 등 대흥·관산 그리고 강진의 칠량, 대구 접주들은 장흥에서 남쪽 40리 지점인 고읍 대내장(竹川場, 玉山)으로 후퇴하여 다시 전열을 가다듬었다. 이들은 엄동설한에도 불구하고 4∼5천을 모아 최후의 결전을 벌이기로 하였다. 일본군과 경군은 17일 오후에 나타났으며 대내장에서 최후의 결전을 벌이게 되었다. 『순무선봉진등록』에 "17일에 출발하여 남면 40리 지점에 있는 대내장으로 향하였다. 남쪽을 바라보니 왼쪽에는 바다가 펼쳐 있고 산천은 험준한데 어찌된 일인지 비류 4∼5천명이 모였으며 옥산 일대에도 진을 치고 있었다. 때로는 함성을 지르고 때로는 포를 쏘며 여전히 날뛰니 해괴하고 통탄스러웠다. 대오를 정돈하여 일제히 공격하니 적의 무리는 크게 패하여 포살자가 1백여 명이요 생포자가 20여 명이나 되었다. 그 중 10여 명은 효유해서 방면하고 나머지는 포살하였다. 5리 남짓 쫓아갔으나 때마침 풍설이 대작하고 황혼이 깔리며 밤이 되어 곧 돌아 왔다"고 하였다. 관산읍에 사는 손동옥(孫東玉)의 증언에 따르면 "동학군과 일본군은 고읍천(古邑川)을 사이에 두고 3∼4시간 싸우다가 동학군이 패했다. 총소리에 놀란 옥산 주민들은 뒷산으로 피신하여 온 산이 백산이 되었다. 일본군은 이들에게 총격을 퍼부어 무고한 주민들이 많이 사살되었다"고 하였다. 여기서 패한 동학군은 해남와 진도쪽으로 피신했으며 대흥 대접주 이인환을 비롯하여 강진군의 대구·칠량 두 곳 동학군 두목들은 천관산(天冠山)과 여러 산중으로 숨어들었다. 성암 김재계는 석대벌 최후 전투를 다음과 같이 증언하였다.
아버지는 내가 자고 있는 밤중에 돌아오셨다. 그 이튿날 아침에 아버지께서 할머니와 이웃 사람에게 이런 말씀이 있었다. 이번에 보성·장흥·강진·병영을 함성하고 도로 남면 어산 앞에 와서 유진하고 있는데 본읍으로 소식이 오기를 경군과 일병이 본읍 남산 봉명대에 유진하고 있다 한다. 이 소식을 들은 수십만 군중은 일시에 더욱 흥분 되야 기세를 올리며 바로 석대평으로 남산을 직충할새 석대평을 거의 지나자 선군(先軍)이 퇴진을 해서 막았던 큰물이 일시에 터지는 것같이 사람의 물결은 말할 수가 없이 서로 남으로 동으로 흩어지기 시작한다. 십리 밖에까지 총알이 비오듯 전후좌우로 참벌 우는 소리가 나며 사람은 앞뒤에서 턱턱 거꾸러진다. 어찌할 줄을 모르고 갈팡질팡 산을 넘어 산으로 산으로 해서 어젯밤 자정 후에 집에 돌아 오셨다.
대내장에서 패한 동학군은 뿔뿔이 흩어져 일반 동학군은 자기 집 근처로 돌아와 숨었으나 지도급 인사들은 산으로 바다로 피신하였다. 일반 동학군은 체포되더라도 용서받을 수 있었지만 지도급 인사들은 체포되는 대로 살해되었다. 일본군과 관군뿐만 아니라 수구세력들이 일어나 민군을 조직하여 동학군을 수색하는 데 혈안이 되었으며 붙잡는 대로 학살하였다.
4. 일본군의 살인 행위
『동학당정토약기』에 의하면 장흥 전투를 계기로 일본군은 동학군을 무차별 학살하라는 엄명을 내렸다. 이것은 일선 일본군의 임의로 결정한 것이 아니라 일본 공사와 군 수뇌부가 결정한 살인방침이었다. 즉 "장흥·강진 부근 전투 이후로 많은 비도를 죽이는 방침을 취하였다. 이는 소관 한 사람의 생각으로 한 것이 아니라, 훗날에 재기할 가능성을 제거하기 위하여 다소 살벌하다는 느낌을 살지라도 그렇게 하라는 공사(公使)와 사령관의 명령이 있었기 때문이다. …장흥 근처에서는 인민을 협박하여 동학도에 가담시켰기 때문에 그 수가 실로 수 백 명에 달하였다. 그래서 진짜 동학당은 잡히는 대로 이를 죽여버렸다"고 하였다. 보고에 의하면 현지에서 처형한 인원은 해남 250명, 강진 320명, 장흥 300명, 나주 230명이라고 하였다. 이 지역 동학도들은 전라감사 이도재(李道宰)의 포악스러운 탄압으로 1896년 5월까지 무려 1천여 명 이상이 학살되었다. 장흥 지역의 혁명투사였던 이인환 대접주를 비롯하여 이방언·이사경·김삼묵 등 지도자들과 많은 동학도 들도 학살당하였다. 이인환은 천관산 굴속에 숨어 추위에 떨다가 1월 21일 밀고로 체포되어 나주 남문 밖에서 1895년 3월 27일(양 4월 21일) 향년 56세를 일기로 장살되었다. 이방언도 12월 25일에 체포되어 나주를 거쳐 서울까지 압송, 3월 21일에 재판을 받아 일단 풀려났으나 1895년 4월 22일(양 5월 16일) 이도재(李道宰)의 체포령으로 회천면(會泉面)에서 아들 이성호(聖浩)와 같이 체포되어 4월 25일 벽사역에서 57세를 일기로 부자가 포살되었다. 부산 대접주 이사경(李士京)은 용반리(龍盤里) 서쪽 기역산(騎驛山) 베틀바위에 숨었다가 1895년 1월 13일(양 2월 17일)에 체포되어 15일에 벽사역에서 포살되니 42세였었다. 이밖에 벽사역에서 사살된 동학지도자 중에는 관산 접주 김학삼(金學三)이 대내장 전투 후 12월 25일에 체포되어 27일에 42세로 순도하였고, 박치경(朴致京) 접주도 12월 26일 관산 지역에서 체포되어 28일에 순도하였으며, 또한 박채현(朴采鉉·現) 접주도 28일에 39세의 나이로 순도하였다. 박기현일사에는 병영에서 "12월 27일에 유치로 병정을 보내 동학군을 많이 잡아다 참형하였다. 이 때 도내 각 읍에서 동학군을 참형하지 않는 날이 없었다"고 하였다. 장흥 대덕 김재계는 <교사이문>에서 "이곳 저곳에서 사람들이 수군수군하며 인제는 다 죽는다고 야단들이다. '경군이 온다, 수성군이 온다, 민보군을 조직한다, 방수장이 났다, 수성막을 짓는다, 어느 곳에서는 한 동리가 함몰했다, 삼부자가 한 총에 죽었다'는 등 참으로 어수선하였다.…산으로 들로 다니며 을미년 늦은 봄까지 지냈다"고 하였다. 『천도교회월보』에는 강진 접주 절암(節菴) 윤세현(尹世顯)의 피신 경위를 다음 요지와 같이 기록하고 있다.
포덕 35년(1894) 4월에 동지 수십 인과 같이 고부 전봉준 혁명에 참가하였다가 7월에 강진으로 내려 왔다. 동년 11월에 장흥 이인환 접과 합세하여 일거에 보성, 장흥, 강진, 병영을 함락하였다. … 장흥 남문외 석대에서 … 12월에 관군에게 패배한 후 장총 하나를 들고 천개산, 백적산을 오가며 피신하였다. 어느 날 밤 하산하여 보니 삼간 집이 불타버렸다. 담장에 은신하여 살펴보니 처 양세화(梁世嬅)가 유아(아들 尹柱行)를 업고 세 살 여아를 안고 한기에 떨고 있는 것을 보았다. 돌을 던지니 양세화는 마을을 가리키고 산을 가리키며 다시 산으로 올라가라 하였다. … 절암장의 일가 70여 호는 화가 미치자 속히 포착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중형은 강진옥에 감금되고 처 양세화도 끌려가다 군리(郡吏)의 주선으로 풀려났다. … 나중에는 산에 불을 지르고 민군으로 산을 뒤지었다. 도저히 있을 수가 없어 월 여만에 피신 중이던 처남 양해일(梁海日)과 다른 사람 5∼6인과 같이 산을 떠나 배를 구해 타고 해남 방면으로 달아났다. … 포덕 38년 1월에야 고향으로 돌아와 장흥 대덕 연지리로 이사하여 동학운동을 다시 재개하였다.
결 론
장흥·강진 지역 동학도들은 4월부터 전봉준 장군이 이끄는 동학군과 합류하여 황룡강 전투를 비롯하여 전주성 함락에 참여하였다. 그리고 6월부터 내려와 도소를 설치하고 활동하였다. 10월부터는 항일전을 위해 기포하여 북상하려 하였다. 그러나 장흥 부사 박헌양의 주도로 벽사, 강진, 병영의 병력을 동원하여 탄압하려 하자 지방 보수세력과 싸우지 않을 수 없었다. 힘이 부족하자 금구 김방서 대접주에게 원군을 요청하여 12월 초부터는 벽사역·장흥부·강진군·병영 등을 모조리 공격하였다. 뒤이어 그 여세를 몰아 영암·해남도 점령하려 하였다. 그러나 일본군이 출동하여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 천추의 한을 남기게 되었다. 장흥·강진 지역에 동학 세력이 강하게 자리잡을 수 있었던 것은 민중들이 절대적인 호응이 있었기 때문이다. 장흥군은 부사가 통치하는 곳이요, 벽사역참은 많은 역졸을 거느린 찰방이 있던 곳이다. 그리고 강진현은 성리학으로 세뇌된 보수세력이 강했던 곳이며 병영은 전라도 병마절도사가 1천여 명의 병사를 거느리고 있던 곳이다. 이밖에 회진(會鎭)에는 만호(萬戶)가 있었다. 좁은 지역에 이처럼 권력기관이 많았으니 민중들의 생활은 고단했을 것은 뻔한 일이다. 조선왕조가 해체기를 맞은 극한상황에 이르러 동학군이 잘못된 나라를 바로잡고 백성을 평안하게 한다는 혁명의 깃발을 올리자 억눌렸던 민중들은 자연스럽게 동학의 산하에 모여들게 되었다. 일단 동학에 들어오면 양반 상놈이 없어지고 서로 존대하며 도와주고 모든 사람이 한울님처럼 대접받을 수 있는 새로운 삶의 틀을 만들어 가자는 미래 사회의 꿈을 제시하니 동학이야말로 민중들의 숭상해야 할 신념체계였다. 그런데 민중의 살 길을 가로막는 일본군이 나타나 나라의 주권을 강점하고 민중의 꿈을 짓밟아 버리자 동학지도부가 항일전에 나서라는 명령에 따라 장흥·강진 동학군은 목숨을 내맡기고 서슴없이 궐기하였던 것이다. 동학군의 주력이던 북쪽 동학군이 모두 패하여 해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장흥·강진 동학군들은 막강한 일본군을 물리치기 위해 힘겨운 공격에 나섰던 것이다. 12월의 궐기는 동학혁명운동에서 이 지역의 열기를 읽을 수 있는 역사적 사건이라 할 수 있다. 11월 11일에 전봉준 휘하의 동학군 주력과 북접 통령 손병희 휘하의 동학군이 공주 전투에서 무너져 원평에서 막을 내렸으며, 김개남 휘하의 전라좌도 동학군도 11월 13일 청주전투에서 패하여 해산하였고, 또한 나주를 포위했던 손화중 고창 동학군과 최경선 정읍 동학군이 12월 1일에 이미 해산하였다. 12월에 일본군과 싸운 곳은 전라도에서는 장흥·강진이고, 충청도에서는 신사와 손병희가 이끄는 북접군뿐이었다. 끝으로 이 지역 혁명운동에서 주목되는 것은 초지역적(超地域的)으로 동학군의 연대의식이 강했었다는 점이다. 멀리 금구 동학도들이 지원하려 내려왔고 화순·능주·보성 등지와 영암·해남 동학군들이 목숨을 건 끈끈한 연대의식은 역사의 귀감이다. 대부분의 동학군은 순박하기 이를 데 없는 농민들이었다. 이들이 보국안민의 깃발 아래 목숨을 던지며 연대할 수 있었던 것은 동학사상과 그 신앙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사진설명; 1894년 12월 15일 동학군이 일본군을 물리치기 위해 3만이 공격하였을 때 치열하게 벌어졌던 전투지인 장흥읍 석대벌 일대. 사진설명; (위) 1894년 12월 7일에 동학군이 점령했던 강진읍성의 일부. (아래) 전라병무절제사가 있던 병영자리와 영암 월출산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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