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천도교인으로 살아왔는가?
페이지 정보

본문
나는 왜 천도교인으로 살아왔는가?
처음엔 아무것도 몰랐다.
어렸을때 부터 아버지가 저녁9시면 청수를 모셨고. 새벽 5시전에 기침하시고 나면 나와형은 눈꼽도 떼지 못한 상태로 앉아 기도식을 하면서 꾸역 꾸역 졸다가 기도식이 끝나면 이내 잠들곤 했다.
시일이면 이십오리가 넘는 김제 교구까지 어린나이에 쫄랑쫄랑 따라갔으며 실눈뜨고 어른들 주문외우것만 보고 있다가 온것 같다.
그러다 11살때 아버지가 환원 하시고
다음 해 부터 뒷집 동무와 교회를 다녔다.
고등학교도 기독교 고등학교였고
교회활동을 하면서 집행부활동도 했다.
그러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몸이 상태가 안좋았다. 비리 비리 마르고. 음식을 먹을수가 없었다. 읍내 내과에 가서 진료를 받고 금식후에 내시경 을 하러 베드위로 올라가 누워 있는데 10여년 넘게 생각지 않았던 주문이 외워지는것은 무슨 의미였을까?
내시경을 끝내고 결과는 정상으로 나왔는데
도통 밥을 먹지를 못하고 몸은 가리 가리 야위여 가는 모양세에 나도 모르게 어릴적 아버지 손잡고 갔던 김제 교구를 기억하며 더듬어 어림어림 찿아 다녔다.
어느날이였다.
어머니께서 말씀하신다.
읍내 토미널에 있으니 어느 처음보던 여승이 어머니를 바라보고 셋째아들 많이 아프지요? 하고 묻더란것이다.
그렇다고 했더니 남편이 가던 종교를 잊고 있어 그러니 그길을 가라 하시더란다.
그래서 더욱 교구를 찿고싶어 헤메이다
몇일후 찿았으나 문은 닿여 있고.
거기에 기거하는 분에게 물어보니 격주로 시일을 보신다기에 시일보러 가게 되었고.
시일 보는 어느날 교구장님께서 대학생 성지 술래가 있다며 가겠냐기에 어머니 허락을 받고 경주에 도착해서 성지 술래 과정에서 김모 동덕이 홍천가리산수도원을 소계해줘서 수련을 시작 하게 되었는데 아마도 본격적으로 천도교인이 된것은 그때 부터 인걸로 생각이 든다.
수련기간에 많은 일이 있었는지 수련이 끝나고 고향집에 와 있는데 친구 어머니가 다가오더니 너 어디에 다녀 온 거니? 하고 묻길래 대답하니까 너 이제 얼굴보니 산 사람 얼굴 같구나. 동래사람들이 어머니 앞에서 말은 못해도 너 어찌 될까봐 다들 걱정 했다고 한다. 그 후로 좀더 열심히 공부를 한다고 했는데 교리공부는 엄두를 못내고 있었다.
그로 인해 짜증도 나고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그래서 교리공부는 제쳐 두고 오직 주문만 해왔다.
지금도 교리가 무엇인지 모르고. 주문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주문만은 짬 시간이라도 할때는 열심히 해오다 보니 지금은 내가 천도교인 으로 살고 있는가? 문득 생각이스쳐 지나간다.
성질머리 고약한 다열질 사내놈의 일상이 파노라마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세계적인 과학자 파스퇴르는 파리의 에콜 노르말에서 물리와 화학을 공부 하고. 다방면으로 뛰어난 재능을 보인 학자였다고 한다. 그는 프랑스 정부에서 세운 파스퇴르 연구소 소장 까지 지냈지만 생활은 언제나 가난했다고 한다.
하루는 제자가 그의 집을 방문을 하고서는 민망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물었다한다.
선생님께서는 지금까지 연구한 업적만으로도 많은 돈을 벌수 있는데 왜 돈 벌 생각을 안하십니까?
그러자 파스퇴르가 껄껄 웃으며 이렇게 대답을 했답니다.
자네는 처음에 돈벌기 위해 과학자가 되었나? 분명 아닐걸세. 발견 하는 기쁨.진리에 좀 더 가까이 다가서는 것에 흥미를 느껴서일게야. 내가 돈벌려고 마음 먹었다면. 특허권을 따 엄청난 부를 쌓을수도 있었겠지. 대신 난는 돈에만 정신이 팔려 그 많은 여구를 해내지 못했을걸세. 신리 내게 준 임무는 세계 인류의 구원과 행복을 위해 지금처럼 연구에 매진 하는걸세..
이 이야기를 돌이켜 보면 내가 천도교인으로서 도통이란 말에 천도교를 하는 것은 아니였을게다. 도통에 현혹되어
파고들었다면 과연 도통을 했을까? 생각을 돌이키게 된다.
나는 도통을 하기 위해 천도교인이 되었는가 이다.
천도교인은 옳바르게 행한다면 그것이 도통이 아니련가?
도통만을 쫏다가 미치광이가 되고 미신에 심취될수도 있었을 것 이다에 까지 생각이
가게 된다.
도통은 하려 해서 되는 것이 아닐깨다.
도통을 하면 뭘 하겠다고 생각이 되는가?
도통을 하려 하지말고 한울님 모심으로 옳곧게 걸어간다면 도통은 자연으로 오지 않을까? 3년이되든 10년이 되든 아니면 죽기전에라도 흔히 말하는 도통의 자리에 오르고 떠난다면 그때 나는 천도교인으로 살았 었구나 라고 생각해본다..
장마가 시작된 어느날
가평 산속에서
旼菴心告
처음엔 아무것도 몰랐다.
어렸을때 부터 아버지가 저녁9시면 청수를 모셨고. 새벽 5시전에 기침하시고 나면 나와형은 눈꼽도 떼지 못한 상태로 앉아 기도식을 하면서 꾸역 꾸역 졸다가 기도식이 끝나면 이내 잠들곤 했다.
시일이면 이십오리가 넘는 김제 교구까지 어린나이에 쫄랑쫄랑 따라갔으며 실눈뜨고 어른들 주문외우것만 보고 있다가 온것 같다.
그러다 11살때 아버지가 환원 하시고
다음 해 부터 뒷집 동무와 교회를 다녔다.
고등학교도 기독교 고등학교였고
교회활동을 하면서 집행부활동도 했다.
그러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몸이 상태가 안좋았다. 비리 비리 마르고. 음식을 먹을수가 없었다. 읍내 내과에 가서 진료를 받고 금식후에 내시경 을 하러 베드위로 올라가 누워 있는데 10여년 넘게 생각지 않았던 주문이 외워지는것은 무슨 의미였을까?
내시경을 끝내고 결과는 정상으로 나왔는데
도통 밥을 먹지를 못하고 몸은 가리 가리 야위여 가는 모양세에 나도 모르게 어릴적 아버지 손잡고 갔던 김제 교구를 기억하며 더듬어 어림어림 찿아 다녔다.
어느날이였다.
어머니께서 말씀하신다.
읍내 토미널에 있으니 어느 처음보던 여승이 어머니를 바라보고 셋째아들 많이 아프지요? 하고 묻더란것이다.
그렇다고 했더니 남편이 가던 종교를 잊고 있어 그러니 그길을 가라 하시더란다.
그래서 더욱 교구를 찿고싶어 헤메이다
몇일후 찿았으나 문은 닿여 있고.
거기에 기거하는 분에게 물어보니 격주로 시일을 보신다기에 시일보러 가게 되었고.
시일 보는 어느날 교구장님께서 대학생 성지 술래가 있다며 가겠냐기에 어머니 허락을 받고 경주에 도착해서 성지 술래 과정에서 김모 동덕이 홍천가리산수도원을 소계해줘서 수련을 시작 하게 되었는데 아마도 본격적으로 천도교인이 된것은 그때 부터 인걸로 생각이 든다.
수련기간에 많은 일이 있었는지 수련이 끝나고 고향집에 와 있는데 친구 어머니가 다가오더니 너 어디에 다녀 온 거니? 하고 묻길래 대답하니까 너 이제 얼굴보니 산 사람 얼굴 같구나. 동래사람들이 어머니 앞에서 말은 못해도 너 어찌 될까봐 다들 걱정 했다고 한다. 그 후로 좀더 열심히 공부를 한다고 했는데 교리공부는 엄두를 못내고 있었다.
그로 인해 짜증도 나고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그래서 교리공부는 제쳐 두고 오직 주문만 해왔다.
지금도 교리가 무엇인지 모르고. 주문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주문만은 짬 시간이라도 할때는 열심히 해오다 보니 지금은 내가 천도교인 으로 살고 있는가? 문득 생각이스쳐 지나간다.
성질머리 고약한 다열질 사내놈의 일상이 파노라마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세계적인 과학자 파스퇴르는 파리의 에콜 노르말에서 물리와 화학을 공부 하고. 다방면으로 뛰어난 재능을 보인 학자였다고 한다. 그는 프랑스 정부에서 세운 파스퇴르 연구소 소장 까지 지냈지만 생활은 언제나 가난했다고 한다.
하루는 제자가 그의 집을 방문을 하고서는 민망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물었다한다.
선생님께서는 지금까지 연구한 업적만으로도 많은 돈을 벌수 있는데 왜 돈 벌 생각을 안하십니까?
그러자 파스퇴르가 껄껄 웃으며 이렇게 대답을 했답니다.
자네는 처음에 돈벌기 위해 과학자가 되었나? 분명 아닐걸세. 발견 하는 기쁨.진리에 좀 더 가까이 다가서는 것에 흥미를 느껴서일게야. 내가 돈벌려고 마음 먹었다면. 특허권을 따 엄청난 부를 쌓을수도 있었겠지. 대신 난는 돈에만 정신이 팔려 그 많은 여구를 해내지 못했을걸세. 신리 내게 준 임무는 세계 인류의 구원과 행복을 위해 지금처럼 연구에 매진 하는걸세..
이 이야기를 돌이켜 보면 내가 천도교인으로서 도통이란 말에 천도교를 하는 것은 아니였을게다. 도통에 현혹되어
파고들었다면 과연 도통을 했을까? 생각을 돌이키게 된다.
나는 도통을 하기 위해 천도교인이 되었는가 이다.
천도교인은 옳바르게 행한다면 그것이 도통이 아니련가?
도통만을 쫏다가 미치광이가 되고 미신에 심취될수도 있었을 것 이다에 까지 생각이
가게 된다.
도통은 하려 해서 되는 것이 아닐깨다.
도통을 하면 뭘 하겠다고 생각이 되는가?
도통을 하려 하지말고 한울님 모심으로 옳곧게 걸어간다면 도통은 자연으로 오지 않을까? 3년이되든 10년이 되든 아니면 죽기전에라도 흔히 말하는 도통의 자리에 오르고 떠난다면 그때 나는 천도교인으로 살았 었구나 라고 생각해본다..
장마가 시작된 어느날
가평 산속에서
旼菴心告
- 이전글천도교에서 신앙하는 천(天, 神)에 대해서(1) 25.07.17
- 다음글세상은 참으로 아름다운것을. 25.07.16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