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이화 vs 무위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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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의 무위이화(無爲而化)와
선도의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의미를 비교해 보았습니다.
선도의 무위자연은 사람의 작위함이 없이 자연스러움의 의미라면,
동학의 무위이하는 무체(한울님)의 작위로 조화가 이루어진다는 의미입니다.
좀 더 설명을 붙이자면,
‘무위’는 ‘함이 없다’ 또는 ‘인위를 가하지 않는다’의 뜻으로 보기도 합니다.
무위(無爲)와 반대되는 의미인 유위(有爲)와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무위’를 말하면 대체로 노자(老子)를 생각하게 되고 노자의 사상인
‘무위(無爲, 함이 없다)’
‘무위이무불위(無爲而無不爲, 함이 없으되 하지 않음이 없다)’
‘도법자연 (道法自然,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 등을 떠 올리게 됩니다.
이러한 사상은 그 의미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람의 관점에서 사람이 인위적으로 더하지 말고
자연의 스스로 그러함을 본받아야 한다는 철학에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은 자연을 배워야 하고 자연을 인위적으로 어떻게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사상입니다.
참으로 고상하고 높은 사상입니다.
이번에는 동학의 시각으로 보겠습니다.
무위(無爲)와 반대되는 의미인 유위(有爲)와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여기서 ‘爲’의 의미는 ‘~하다’입니다.
즉, 누군가 주체가 있어서 무언가를 한다는 뜻입니다.
새싹이 돋고 줄기가 자라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는다는 것은 누군가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주체가 없이 그냥 함이 없이 그렇게 될 수는 없습니다.
‘자연은 함이 없다’고 말하지만,
꽃이 피는데 꽃나무의 작위가 없이 꽃이 필 수는 없습니다.
배나무에 배꽃이 피고 배 열매가 열리기 위해서 배나무는 비바람을 이겨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이 있는데 어찌 배나무의 작위 함이 없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배나무에 배꽃이 열리고 배가 열리는 자취를 나타내는 것이 천도(天道)입니다.
<논학문>에서는 ‘천도란 무형한 한울님이 자취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조화의 주체인 무형한 한울님은 체가 없기에 무체(無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든 무엇이든 형체를 이루게 되면 ‘유체’라고 할 수 있지만,
형체가 없다면 ‘무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체법경>에서 말하는 그 ‘무체(無體)’입니다.
유체(有體)와 유위(有爲), 무체(無體)와 무위(無爲)를 나누어 생각해 보면,
‘유체’의 작위가 있는 것을 ‘유위’라고 할 수 있고,
‘무체’의 작위가 있는 것을 ‘무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체인 사람의 작위와 무체인 한울님 작위로 구별할 수 있습니다.
무체인 한울님 작위(무위이화)로 사람을 포함한 세상은 태어나고 살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유체는 체가 정해져 있어서 그 개체에 구속되기에 한계가 있어서 천지를 아우를 수 없으나,
무체는 체가 정해지지 않았기에 구속됨이 없고 한계가 없어서 천지를 아우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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