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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운동유적지

    [3.1운동유적지]  태화관터

    명칭 태화관터
    설명 민족대표 33인이 1919년 3월1일 독립선언을 하신 곳
    주소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방문자 수 1338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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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 천도교와 3.1독립운동 ◇



    1. 민족대표들 태화관에서 독립선언

    드디어 3월 1일이 밝았다. 최린은 아침에 대문 안에 독립선언서가 두장 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 서울시내에 배포되었음을 확인하고 의암성사의 집으로 가서 권동진· 오세창과 같이 의암성사를 모시고 12시경 태화관에 도착했다. 약속된 시간인 오후 2시까지 기독교측에서 길선주 · 유여대 · 김병조 · 정춘수가 불참한 가운데 민족대표 29명이 모였다. 독립선언서를 민족대표 각자에게 나누어준 후 의암성사는 이종일에게 독립선언서를 직접 인쇄 배포했으니 크게 낭독하라고 해서 이종일이 선언서를 낭독하였다. 낭독이 끝나자 의암성사는 최린에게 경무총감부에 전화로 이 사실을 통보하도록 지시하고 일동에게 민족대표로서 당당히 행동할 것을 강조했다. 또한 조선총독부와 종로경찰서에도 독립선언서와 독립통고서를 인편으로 보냈다.


    이윽고 일본경찰 수십명이 태화관을 포위하였다. 이때 탑골공원에 모인 수만명의 학생과 시민들이 독립선언 장소가 변경된 것을 뒤늦게 알고 학생대표 강기덕 · 김원벽 · 한위건 등이 태화관으로 달려와 민족대표에게 장소변경을 항의하며 탑골공원으로 갈 것을 강력히 요구했으나 이들을 설득시켜 돌려보냈다. 일본경찰이 포위한 가운데 민족대표 일동은 자리에서 일어나 조선독립만세를 크게 외쳤다. 일경은 의암성사를 필두로 세 사람씩 자동차에 싣고 압송했다. 특히 나용환· 이종일· 이승훈은 한차에 태워져 실려가면서 독립선언서를 수백매를 군중들에게 뿌리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치자 군중들도 목이 터져라 하고 만세를 불렀다.



    2. 전국 방방곡곡으로 확산된 독립만세운동

    한편 탑골공원에는 수만명의 군중이 운집한 가운데 학생들의 주도 아래 오후 2시경 중앙단상에는 10년동안 자취를 감추었던 태극기가 나타났고 경신학교 졸업생 정재용이 단상에 올라가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낭독이 끝나자마자 군중 속에서 【대한독립만세】소리가 터져나오면서 민중의 환호소리가 천지를 진동시켰다. 학생들은 모자를 공중으로 날리며 환호했다. 이미 일본경찰이 현장에 출동했으나 이들을 막지 못했다.


    곧이어 군중들은 공원을 나와 동서남북을 가릴 것 없이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가행진에 돌입했다. 서울역, 미국영사관, 광화문, 대한문, 소공동, 충무로, 창덕궁, 안국동, 서대문 프랑스대사관, 동대문 등 서울 시내가 하루 종일 만세소리에 휩싸였다. 특히 이날 덕수궁 대한문 앞에는 지방에서 고종의 부음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올라와 고종의 돌연한 죽음을 애도하는 군중들이 모여 있었는데 이들도 만세 대열에 합세하였고, 시간이 지날수록 만세시위에 합류하는 서울시민들이 늘어나 수십만 군중이 서울 시내를 누비며 만세를 불렀다. 당시 천도교 보성사에서 비밀리에 발행 배포한 [독립신문]2호에는 이날의 광경을 이렇게 보도하였다.

    “塔洞公園에 會在하였던 數萬의 學生이 朝鮮獨立萬歲를 齊唱하면서 手舞足蹈하면서 風蕩潮湧의 勢로 長安을 貫中하니 枯木灰死가 아닌 우리 民族 金魚籠鳥가 아닌 우리 民族으로 誰가 感泣치 않으리오”

    이렇게 해서 서울에서 시작된 독립만세운동은 삽시간에 전국 방방곡곡으로 노도와 같이 퍼져나가 삼천리강산이 온통 태극기와 만세소리로 뒤덮였고, 그 물결은 국경을 넘어 해외에까지 확산되었다. 이것은 천도교의 전국조직망을 비롯해서 기독교· 불교 등과 사전 조직화작업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특히 천도교는 당시 국내 최대의 종단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 조직이 중앙집권제였기 때문에 독립만세운동을 지방으로 확산 발전시키는데 매우 효과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다. 또한 거사에 대비해서 대 교구마다 한 대씩 비치해 두었던 등사기를 이용해서 중앙에서 보내온 독립선언서를 등사하여 각기 소속교구에 신속히 배포하는 등 여러 지방에서 교구가 중심이 되어 독립만세 시위를 주도했다. 당시 각 도별로 천도교가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한 지역을 살펴보면 대개 다음과 같다.

     

    경기도서울, 옹진, 수원, 강화, 진위, 오산, 화성, 송산, 인천, 용인, 수지, 월미도, 발안, 이천,
    평택, 광주, 양주, 가평, 양평, 시흥, 부천, 여주, 진위
    충청남도대전, 부여, 임천, 공주, 논산, 아산, 서산, 태안, 예산, 운산, 청양, 홍성
    충청북도충주, 진천, 괴산, 제천, 음성, 청주, 영동, 상원
    강원도철월, 춘천, 횡성, 홍천, 양구, 이천, 김화, 화천, 통천, 원주, 회양, 정선, 평강, 양양,
    현북, 삼척, 평창
    경상남도진주, 창녕, 영산, 함안, 군북, 창원, 고현, 합천, 고성, 언양, 함양, 부산, 마산, 삼진
    경상북도안동, 경주, 김천
    전라남도장흥, 완도, 전주, 진도
    전라북도임실, 익산, 전주, 순창, 둔남, 남원, 함열, 정읍
    평안남도평양, 온산, 강서, 용강, 진남포, 중화, 상원, 안주, 강동, 성천, 양덕, 자산, 덕천, 숙천,
    순천, 맹산, 덕천, 영원, 평원, 삼등, 개천
    평안북도의주, 선천, 강계, 용천, 신의주, 운산, 삭주, 초산, 영변, 철산, 벽동, 위원, 후창, 태천,
    구성, 자성, 창성, 정주, 수구, 장토, 어뢰
    황해도수안, 곡산, 석달, 마산, 해주, 장연, 안악, 은율, 황주, 겸이포, 신계, 재령, 송화, 평산,
    금천, 사리원, 연백, 신천

    함경남도

    원산, 함흥, 영흥, 정평, 북청, 이원, 단천, 풍산, 삼수, 갑산, 홍원
    함경북도성진, 길주, 경성, 수성, 무산, 부령
    중 국화령, 청산리, 장백, 집안, 치와보, 훈춘, 수신사, 대양차, 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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