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도교 4세 대도주인 춘암 박인호 선생댁의 일지를 주해한 책. 이 일지는 1935년 10월부터 1938년 3월 4일까지 기록된 것으로, 1938년 3월 4일은 일제의 멸망과 조선의 독립을 기원하는 천도교인들의 비밀 기도회가 일제에 의해 발각(1938.2.17)되어 대대적인 검거선풍이 최고조에 달한 때이다.
춘암 상사(上師) 댁을 드나든 인물들과 그들의 동정을 기록하고 있어 일제 말기 천도교의 역사를 이해하는 귀중한 자료가 되며, 당시의 생활상을 공부하는 흥미로운 기록도 될 수 있다. 권말에 353명에 달하는 이 책의 등장인물(유력 천도교인들)에 대한 인물사전과 춘암 상사 관련 화보는 비교적 소략한 이 일지 본문을 깊이 읽고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책속에서
1. ... 춘암 상사는 천도교 제4세 교주임에도 불구하고 1930년대 초까지 집 한 채가 없이 전셋집에서 살았다. 다행히 1933년 7월에 (황해도 교인) 홍명희가 종로구 내수동 92번지에 집을 한 채 마련해 주어 살게 된 것이다. ... 당시 상사댁은 아들 3형제(래홍, 래원, 래천)의 가족이 모두 함께 살았으며(래홍은 요절), 매일 방문하는 교인들로 집안에 식구가 많았다. 그래서 항상 시량(柴糧)이 부족한 형편이었으며, 심지어는 상사의 끼니까지 걱정해야 할 때도 있었다. ... (머리말 중.. 이 책은 모두 내수동-당시 수창동-에서 씌어졌다.)
2. 1936년 4월 7일(화) 비. 오전 9시에 교헌수정위원 9인 중 8일이 교주께 내알하고, 교헌 수정의 경과를 품함에 “무엇이든지 서로 화기(和氣)와 순사(順辭)로써 의논하고, 고성과 홍안(紅顔)으로 상대하지 말라. 감응하지 않는다.” 하시고, 또 “욕심을 가지고 의논치 말라.” 하시다.(본문 72쪽)
3. 1936년 7월 8일(수) 흐림. 김순오, 박한규 양씨가 내알하다. 금 20원 봉상하다. 정태영 씨 내숙(來宿)하다. 상사께서 “인모(人謀)와 인심(人心)으로는 도저히 천도교 일을 못하고 천심(天心)이어야만 한다.”고 말씀하시다.(본문 91쪽)4. 1937년 4월 14일(수) 비. 박한규, 김재계, 김경함 제씨가 내알하다. 상사주의 병후(病候)가 감수되시다. 양약을 지어 오고 또 사모주(師母主)의 한약 2첩을 지어 오다. 대종사장이 현기관장 사임원에 대하여 대도주께 품한 후 유임을 권고하기 위하여 반왕(返往)하다.(본문 165쪽)5. 1938년 2월 1일(화) 맑음. 본일 상사주 생신에 대하여 축하 연희가 유학 남녀 교인들이 다수 내참(來參)하다. 신파교회에서 생신비 10원을 봉상하다.(본문 244쪽)